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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뚱보이야기, 거대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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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이야기, 거대화 작업

- Sergei Lee(모스크바 선교사)


거대화를 꿈꾸는 자들의 목표는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한국 제일의 선교단체, 최고 많은 선교사 파송, 2020비전, 2030비전, 5천선교사 파송, 100만 선교사 파송, 최고로 큰 교단, 초고속 성장……. 대충 이러한 것들인데, 이것을 추구하는 모든 것은 대부분 숫자와 관련된 사항이다. 최고를 유지하고 자랑하려는 무익하고 세속적인 허탄한 발상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는 민첩함의 시대이다. 유동성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를 역질주하는 것이 바로 뚱보가 되는 작업, 거대화 작업이다. 몸집 부풀리기인 것인데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론상으로 몸집 부풀리기는 효율성이라는 것과 시너지 효과, 즉 많은 것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가치 창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목적으로, 은행이나 기업간의 인수합병 통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하여 늘 접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효율성이나 시너지 효과는 그 어디에도 온데간데 없는 경우가 많다.

뚱보를 만들어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성공은 규모가 아니다. 운영면에서 실제적이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역적인 면에서 정말 필요한 것인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일을 결정하는 데에도 덩치가 작으면 즉석에서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덩치가 크면 복잡하다. 불이 나서 소방차량들이 출동을 하여야 하는데, 차를 움직이기 위하여 보고하여야 한다. 상부기관까지 몇 차례 걸쳐서 보고하고, 자리에 없어서 찾아서 보고하고, 보고 안 하면 위계질서를 무시하였다고 시비 걸고, 월권하였다고 덤비니 말이다…. 그래서 질서를 좇아서 보고하고 출동하니 이미 불을 다 꺼진 뒤였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중간 단계의 경영자 혹은 지휘체제를 거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리드하고 있는 단체는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즉시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다. 종이서류는 상급자의 책상에 2분도 놓여 있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세상은 갈수록 단순화 작업을 하고 있다. 선진화되고, 생각 있는 기관들은 결재도 즉석결재를 하고, 급한 일은 처리한 후에 보고하는 것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 교단 선교회는 아직도 구시대적인 발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절차를 따지면서 과정이 복잡해진 경우를 많이 본다. 기다리고 결재를 받으려다 세월 다 가버리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제일 큰 교단의 선교회의 업무 결재나 처리가 한 달씩 걸리고, 이사회의 회의 날자를 기다려 결재를 받아야 하는 구조라면 그것은 병든 구조일 것이다. 분초를 다투는 일도 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핵심 유행어(X덩어리)일 것이다. 오랫동안 생존하려면 이러한 병든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덩치가 크다고 하여서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큰 일을 감당하고 성공적으로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니다. 덩치보다는 사실 경제적 범위의 접근을 확장하여야 한다. 거대한 조직과 숫자를 통하여 내놓을 만한 사역과 성과가 무엇이 있는가? 각 교단이나 선교 부가 서로 비교 조사라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매우 흥미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숫자적인 규모를 늘리고 키우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거대조직은 불확실성의 시대와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항공모함은 규모가 커서 한 번 회전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돌리려면 왜 돌려야 하느냐? 어느 방향으로 돌려야 하느냐? 누가 적합한 자인가? 방법을 찾고 효과를 따지고 하다가 침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다른 거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계에 다름 아닌 선교회의 폭발적인 증가이다. 한국에 선교회가 얼마나 될까? 참으로 엄청날 것이다. 공룡이 되어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성직자가 증가하면 그 나라가 망하고 말았는데…, 선교회가 이렇게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에 신학교가 얼마나 될까? 수백 개가 된다. 거대한 일이다. 선교지에 중복투자를 막으라는 지침은 해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받아온 지적 사항이다. 현대선교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국에서 한국 전체 교회의 차원에서는 거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그것을 향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나가고 있다. 각 교단마다 경쟁적으로 파송하는 선교사들, 한 지역에 각 교단별로 모여있는 선교사들, 사역이 다르면 별문제이지만, 대동소이할 뿐이다. 거대화의 한 모습이다.

소극적으로 자기 지부 안에서 중복투자를 금지하라는 지침은 있지만, 한국교회 차원에서 각 교단 별로 중복투자를 방지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구조조정을 할 의향은 없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선교 훈련원을 하나로 합한다든지, 잘 준비된 선교단체 훈련원에 의뢰하여 전문적이고 질적인 교육을 위하여 통합을 한다든지, 중복투자는 해외에서보다 국내에서 엄청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거대화 작업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다.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니, 각 기업마다 감원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대규모에서 실제적인 소규모로 구조조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전혀 놀랄 일도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태풍이 몰아치기 전에 해야 했던 일을, 태풍이 몰아치니 하는 것이다. 시간차가 있을 뿐이다.

한국 선교가 지속적으로 살아나려면, 분업화 전문화를 시도하여야 한다. 필자는 몇 년 전, 현재 교단 선교부가 가능한 곳부터 각 대륙 별 지역을 중심으로 완전 독립체제로 나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제안하였다. 지역에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처리할 수 있는 행정 독립체제로 나가면서, 본부와는 연합체적인 성격으로 나간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보아도 즐거운 일인 것 같은데…. 대책이 없는 것 같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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