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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정한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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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무소유      
 
-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불교계의 대표적 승려 법정의 무소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의 죽음 이후에 대통령도 조문을 하며 무소유에 대해 극찬을 했다. 서점에서 8000원인 무소유 서적이 온라인에서 5만원에 거래가 된다고 하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무소유를 소유하려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참된 무소유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소유는 소유욕에 집착하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가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가르친 무소유대로만 살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스도인이든 불자이든 적삼 하나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 100% 무소유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무소유를 가르친다. 예수님도 무소유의 삶을 사셨다. 그러나 무소유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경은 지혜롭고 충성되게 일하여 많이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무소유는 신앙적인 무소유, 정신적인 무소유여야 한다. 아파트도 2, 3채 가질 수 있다. 아니 더 많은 부동산과 더 큰 부를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법과 등기상으로는 내 것이지만 신앙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다만 청지기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하시다고 하면 언제든지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이 필요하면 아낌없이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공허한 무소유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정한 무소유적 삶의 섬김이고 영향력이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저서에서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소유적 모드 즉, 해빙 모드(Having Mode)로 살 것이 아니라 존재모드 즉, 빙 모드(Being Mode)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인간의 행복은 소극적인 무소유가 아니라 적극적인 섬김과 나눔의 영향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무소유적 삶을 산다고만 해서 그가 윤리적이고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은둔과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열심히 땀 흘려 일하여 소유한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위해서 섬길 때 그 사람은 진정한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방 안에 앉아서 무소유를 외친다고 해서 진정한 무소유적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장하며 깨끗한 부, 따뜻한 부를 외친 것이 아닌가. 

현대인은 누구나 열심히 돈을 벌어 자녀들을 교육하고 결혼시키고 미래를 준비한다. 무소유로 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우리의 소유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민족과 사회를 섬겨야 한다. 초대교회는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누었다. 이것이 진정한 무소유의 모습이다.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무소유다. 

이제, 한국교회가 거룩한 소유, 깨끗한 소유를 통한 진정한 무소유적 삶을 주도하자. 참된 무소유는 신앙의 무소유다. 소극적 무소유를 넘어 실제적인 무소유적 삶을 통해 민족의 가슴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자.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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