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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거룩하게 사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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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게 사는 훈련 

- 김병삼 목사 (만나교회)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한 거룩하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면 그 일을 이루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 짧은 이야기를 보면 거룩하게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을 듯하다. 

옛날 서양의 풍습에 죄를 지으면 얼굴에 낙인을 찍어 죄를 기억하도록 했다. 어떤 마을에 남의 양을 훔친 죄로 ‘양 도둑(Sheep Thief)’이라는 두 단어의 약자인 ‘S T’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힌 형제가 있었다. 형은 그 낙인이 너무 수치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외국 땅에 가서 과거를 감추고 살기로 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이마의 두 글자가 무슨 뜻이냐고 캐묻는 것이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방황하다가 결국 먼 타향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동생은 ‘양을 훔친 사실은 내가 다른 곳으로 달아난다 해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여기 남아서 내 이웃과 나 자신에게 정직과 신용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해가 바뀌는 동안 그는 정직하다는 평판을 굳혀갔다. 물론 그가 얼마나 많은 수모를 참아가며 노력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마을을 지나가던 낯선 사람이 이제 노인이 된 동생의 이마에 있는 글자를 보고 동네 토박이에게 물었다. 저 사람 이마에 있는 글자의 뜻이 무엇이냐고. 동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 나는 그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글씨는 세인트(Saint)의 약자일 것입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과거의 죄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목회하면서 참 당황할 때가 있는데 집회를 통해, 영성 훈련을 통해, 혹은 어떤 세미나를 통해 감동받고 은혜를 받으면 거룩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성도들 때문이다. 은혜를 체험하는 것과 거룩하게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거룩’은 은혜를 받은 자들이 받는 선물이 아니라 은혜를 선물로 받는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은혜 가운데 살며 이루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는 의롭게 된 자들(justification)이 성스러운 삶(sanctification)을 살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glorification)을 구원이라고 설명했다. 구원이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쪽 강도 중 한 사람이 죽기 바로 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가는 축복을 누린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축복이라 생각하고 부러워한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다가 마지막에 구원받고 천국에 가면 좋겠다.” 

하지만, 천국에 가면 그 강도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그 순간에 행복했습니까?” 

정말로 그가 구원받은 자라면 너무나 안타까웠을 것 같다.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받은 자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천국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거룩을 훈련하는 것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영광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지금 당신이 거룩하지 않지만, 언젠가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거룩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땅 위에서 하늘을 사는 자들의 모습이자 특권이기 때문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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