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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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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 유관재 목사 (성광교회)
 

‘사랑한다’는 말의 비슷한 단어로 우리는 흔히 ‘좋아한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두 단어는 비슷한 말이 아니라 반대말이다. 이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고양이가 쥐를 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고양이는 쥐를 사랑하지 않고 좋아한다. 즉 좋아하는 것은 상대가 아프든, 상처 나든, 피가 나든 상관없이 나의 욕심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프고, 상처 나고, 피가 나더라도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좋아하고 있는가? 나의 욕심이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하나님을 선호하고, 바라보고 있다면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나의 목표를 정해놓고 주님에게 이렇게 해달라고 하며 주님을 따라오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데는 욕심이 담겨 있고, 사랑하는 데는 희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모든 것을 주셨다. 

지금 고난주간을 지내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더 깊이 묵상하고 경건하게 보내는 주간이다. 십자가(Cross)는 헬라어로 ‘스타우로스’라고 하는데 기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기둥 위에 처형하는 형벌이 이루어져 ‘고문대(拷問臺)’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인간이 만든 형벌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이다. 고대 세계에 있어서 말뚝이나 나무에 매다는 처형은 페르시아, 앗수르, 페니키아, 이집트인 등의 사회에 있었고, 후에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에 의해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에스라 6장 11절에는 바사(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리는데 자기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스타우로스’에 달아매어 죽이라고 명한다. 로마제국에 와서는 노예만을 십자가에 죽였으나 때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도 중죄를 범한 경우 이를 적용시켰다. 그러나 너무도 참혹했기 때문에 로마 본국 내에서는 가급적 십자가형을 실시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죄인이 아니었다. 죄 없고 흠 없으신, 완전하신 그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으셨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다. 그 가시는 장미 가시가 아니라 대못과 같은 가시였다. 온몸에 살점이 떨어지는 채찍을 맞으셨다. 양손과 양발에는 못으로 박히셨는데 당시 못은 손가락 두께의 못이었다. 허리는 창으로 찔리시고 물과 피를 다 쏟아내셨다. 

왜 주님은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셨는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쓰고 도를 닦아도 해결될 수 없는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였다. 주님은 극한의 고통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죽음까지 우리를 위해 내놓으셨다. 나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 저주를 받으시고 제물이 되어주셨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고 사랑하신다. 그 주님의 사랑 앞에서 나는 주님을 좋아한다는 고백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고백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고난주간에 우리의 진정한 사랑을 고백해 보자. 순수하게 나의 의지, 감정, 온몸을 다해 주님을 사랑한다고!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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