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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어가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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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가 살려면    
 
- 도원욱 목사 (서울 한성교회)
 

영국 북해에서는 청어가 많이 잡히지만 제값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청어를 산 채로 런던까지 가져가는 일이 어려운 탓이었다. 어부들은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워낙 성질이 급한 청어는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유독 한 어부의 청어만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신기하게 여긴 동료들은 그에게 비법을 알려 달라고 졸랐고 마침내 그 어부는 입을 열었다. “나는 청어 잡은 통에 메기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동료들은 되물었다. “그럼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습니까?” 그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그러나 놈이 잡아먹는 청어는 고작 몇 마리입니다. 남은 수백 마리의 청어들은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런던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도 발버둥을 치며 도망쳐 다니지요.” 메기는 청어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결국 그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 청어를 살아남게 한 것이었다. 

우리네 인생사도 따지고 보면 청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우리를 죽일 것만 같은 고난이 때로는 첩첩산중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고난 때문에 지금도 숨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순절 절기를 보내며 생각하게 된다. 

고난을 환영하고 기뻐할 사람이 있을까마는 고난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고 겸허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말에는 동의할 것이다. 성경 역시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 오는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벧전 4:12). 다시 말해서 고난은 성도의 정상적인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시도록 나 자신을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나를 성숙하게 할 연단의 고난이든, 아니면 나의 잘못과 어긋남으로 인하여 오는 징벌의 고난이든 결과는 축복이다. 왜냐하면 고난은 무언가를 지적해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존심 센 나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고난은 잘못된 길에서 우리를 돌이키게 해주며 허황된 뜻과 마음으로 교만해진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그래서 또한 고난은 우리를 간절하게 한다. 헤럴드 보슬리는 ‘고난 속에서 사람은 기도를 가장 잘 배운다’고 했다. 

누가 뭐라 해도 신앙인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칠십 남짓 인생을 살면서 작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이미 그 고난은 고난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고난은 성숙하게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존 번연은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썼고, 밀턴은 눈이 멀고 나서야 ‘실락원’을 저술했으며, 베토벤 역시 청력을 상실하고 난 후에 교향곡 9번 ‘합창’이란 명곡을 만들었음을 기억하라. 당신의 인생에 어쩌면 이미 여러 번 등장해왔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그 ‘메기’를 통해 더욱 성숙하고 견고한 청어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혹시 어려움 중에 있는가? 그 어려움으로 인해 당신은 ‘숨쉬게’ 될 것이다. 고난은 분명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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