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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야에서 들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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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들리는 소리 

- 안성우 목사 (서대신교회)
 

몇 년 전 호주 코스타(KOSTA)에서 말씀을 전하기 전 시드니의 동쪽 퍼스를 방문했다. 12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호주의 작열하는 태양은 이틀째 되던 날 진가를 발휘했다. 가려워서 만져 보았더니 귓불이 화상을 입어 허물을 벗고 있었다. 

미국의 예방의학과 여의사가 맨발로 넉 달 동안 호주의 대 사막을 62명의 ‘참 사람 부족’들과 횡단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녀를 선택한 것이다. 가족과 작별할 시간도 얻지 못했다. 실종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의 부름이었다. 그녀는 ‘말로 모건’이다. 

첫날 발바닥은 피가 나고 퉁퉁 부었다. 이것은 고생의 시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동 중이던 부족의 어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천천히 흔들었다. 일행들도 따라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가 물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으며, 표정들은 더없이 진지했다. 마침내 한 사람이 몸을 돌리더니, 아침에 우리보다 일찍 떠난 젊은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캥거루 한 마리를 잡았는데 꼬리를 잘라도 되느냐고 묻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막을 이동하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주로 텔레파시를 이용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 모건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30㎞나 떨어진 그들 사이에 메시지가 오가고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나자, 아침의 그 젊은이가 거대한 캥거루를 짊어지고 야영지로 걸어왔다. 

여의사는 그들이 텔레파시로 대화가 가능한 이유를 침묵과 정직 그리고 욕심 없는 삶으로 보았다. ‘무탄트 메시지’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텔레파시보다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거짓과 탐욕과 바쁜 일상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극도의 침묵을 유지하며 걷는 이유는 자연과 소통하기 위함이었다. 물이 어디 있는지,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인간의 역량은 극소화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극대화된다. 모세도 다윗도 야곱도 바울도 광야 생활을 해야만 했다. 우리가 자원해서 광야로 나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몰아넣으실 것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인재사관학교다. 

하루를 살면서 한두 시간은 휴대전화도 침묵 모드로 전환하고 극도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구한다면 사무실도 광야가 된다. 열심히 살지만 바쁘게 살지 않는 것이 좋다. 욕심을 비우고 정직한 삶의 모드로 전환해야 음성이 들린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 보자. 우리 마음의 거울에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어 보자.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보인다면 정직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의 거울에 하나님 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면 광야의 40년을 지내야만 할 것이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광야로 들어가자. 주님이 계신 광야는 더 이상 사막이 아니라 하나님 능력의 극대화를 통한 영성 훈련의 장이기 때문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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