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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대, 이기지 말고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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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기지 말고 이루라      
 
- 도원욱 목사(서울 한성교회)
 

유명한 헨리 비처 목사님에게 대학을 졸업하는 한 청년이 편지를 보냈다. “목사님, 쉽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목사님의 답장은 이러했다. “무덤으로나 가게. 무덤에 가야 편안하지 무덤이 아닌 곳에는 모두 생존 경쟁이 있고 힘을 쏟지 않고 일할 곳은 없다네.” 우리는 어머니의 난자 속에 수억의 정자들과 경쟁하여 들어감으로써 인생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경쟁과 무관한 인생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삶에 있어 당근과 채찍을 부여해 줄 선의의 라이벌은 필요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도 있듯이 과도한 경쟁의식은 오히려 자신의 인격과 공동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에게 불필요한 경쟁심을 느꼈다. 다윗이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고 말하는 소리에 그는 귀 기울였다. 누구보다도 훌륭했던 사울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좀먹듯 자신을 해쳐온 집요한 ‘경쟁심’이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달랐다. 그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외칠 때 사람들은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가 메시아라고 생각할 정도였고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히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요 3:28∼30) 그는 자신의 사명과 자리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사명감을 벗어난 지나친 경쟁의식은 바로 이 ‘기쁨’을 빼앗아간다. 그 기쁨을 빼앗은 자리엔 열등감이 밀려와 자신을 옥죄게 된다. 

이렇듯 파도처럼 시시각각 밀려오는 이 경쟁심의 감정을 어떻게 건강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우선, 시선을 나에게로 고정시켜라. 경쟁자를 향한 시선을 나에게로 고정시켜 나를 정확히 보길 바란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바라는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비전과 꿈을 보아라. 비전과 경쟁심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기를 바란다. 자신의 꿈과는 상관없이 경쟁자를 이기기만 하는 사람이 되겠는가, 경쟁자에게 혹 지더라도 자신의 꿈에 한발자국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보겠는가. 

나에게로 정확한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로 내 시야를 넓혀 고정시켜야 한다. 하나님을 바로 볼 때 비로소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나에게 어떤 역할을 주셨는지 냉정하고도 냉철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대본이라면 그것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나 자신에게 최선이자 최고의 것임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내 자아와 신앙을 훈련받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 보여드릴 마지막 결과물은 철저히 독특하고도 유일한 ‘나’라는 존재인 것이다.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허락하신 그 독특한 삶의 모양을 이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대, 그 용기를 내보지 않겠는가. “사람의 힘과 행복은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여 그 길을 가는 데 있다.”(헨리 비처)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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