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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수선언을 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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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선언을 하는 교회 

- 레너드 스위트 (드루신학대학교 석좌교수)
 

나는 최근 동료인 프랭크 바이올라와 함께 ‘예수 선언’을 발표하고 이를 발전시켜 책으로 출판했다. 왜 우리는 ‘예수 선언’을 해야만 했었나?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언문에서 밝혔듯이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를 방법, 전력, 개념, 원칙, 교리, 프로그램, 유행, 유사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자 울타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과 헌신의 주체이시며 목적이고 동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새로운 인간, 예수님과 같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이 실패한 것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다시 교회를 향해 외친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라고.

진리는 한 인간 안에서 인성으로 나타났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이시다. 진리는 이념이 아니다. 진리는 철학이 아니다. 진리는 윤리가 아니다. 진리는 그리스도이시다. 복음의 진리가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 될 때 교회는 예수 결핍 장애(JDD·Jesus Deficit Disorder)에 걸리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다. 기억하라. “나의 설교를 따르라”가 아니다. “나의 가르침을 따르라”가 아니다. “나의 실천을 따르라”가 아니다. 오직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라”는 “나와 비슷하게 되라”는 뜻 이상이다. 나를 따르라는 “나의 일부가 되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네 안에, 네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너는 나의 자매요, 너는 나의 형제이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우리의 가장 위대한 꿈은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자서전 안에 쓰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신앙의 예수’와 분리될 수 없다. 갈릴리 해변을 걸으셨던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교회에 임하여 계신 분과 동일하시다. 기독교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WJD·What Would Jesus Do?)를 묻지 않는다. 기독교는 언제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WIJD·What Is Jesus Doing through Me and through Us?)라고 물었고, 물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에 의해 사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에 의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번역·정리=감신대 김영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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