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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들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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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뒷모습

- 이태형 부장(국민일보 미션라이프부)





소설가 서영은 선생이 쓴 ‘노란화살표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사진)는 내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여류소설가의 산티아고 순례기이지만 그 안에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깊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처절하게 하나님을 추구하다 결국 만난 한 인간의 고백이 그 안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노란화살표...’를 읽으라고 권했다. 백 마디로 전도하는 것 보다 그 책을 읽게 하는 것이 더 하나님을 대면하게 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서영은 선생과 이후 몇 차례 만났다. 그녀의 말 가운데 인상 깊은 것이 있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 가장 큰 변화는 내 안과 겉이 똑 같아졌다는 것이에요. 내 내면이 화가 나면 그대로 화난 것으로 투영됩니다. 기쁘면 그 기쁨이 그대로 표현됩니다. 지금 내 외면은 내면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책 속에는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을 벗어던지는 내용이 나온다. 수건에 가려진 얼굴이 아닌, 아무것도 가식이 없는 얼굴 그대로 사람을 대하며, 또한 신을 대하는 것이다.

‘음식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음식을 대하는 내 마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문제는 내 몸이 지닌 고정관념에서 오는 것이다.’ 책 속에 나와 있는 구절 중 하나다. 마음의 혁신은 하나님을 대면한 자들의 특징 일 것이다. 수건을 벗고, 고정관념을 벗어 던질 때, 마음의 진정한 혁신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후 ‘노란화살표’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노란색만 봐도 책을, 서영은 선생과 산티아고를 떠올렸다.

업무차 싱가포르를 방문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올라갈 때에 바닥에 노란화살표 비슷한 것이 보였다. 바닥에 출국장 표시를 했는데 그 색깔이 노란색이었다. 빙그레 웃음이 났다.

싱가포르에서 시티하베스트교회 콩히 목사와 업무협약을 위해 만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마음속에 ‘업무차 만나는 사람 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한 명의 한국인을 만나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이 있었다. 한 분의 한국인 선교사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마침 그 선교사는 내가 쓴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이야기인 ‘배부르리라’를 읽고 목회에 대한 여러 가지 묵상을 하던 차였다. 나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에 무척 놀랐다고 한다.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나는 오랜만에 코스타 대표인 곽수광 목사와 통화를 했다. 싱가포르 다녀온 다음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곽수광 목사의 절친이었다. 곽 목사와 장신대 동기였다. 뜻이 있는 만남이었다.

그 선교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갑자기 산티아고 이야기가 나왔다. “산티아고 순례길 아세요?”

“아니, 갑자기 산티아고 이야기 입니까?” 내심 놀라면서 되물었다.

이후 이 선교사로부터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다. 싱가포르에 10년 남짓 살았던 이 선교사는 지난해 안식년 동안 아들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30여 일 동안 800km에 달하는 길을 아들과 함께 걷고 또 걸었다.

이 선교사의 아들은 소위 ‘문제아’다. 싱가포르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은 현지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 홀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도 학교생활을 지속하지 못했다. 어느날 “학교를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선언한 뒤에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선교사로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들에 대한 지원은 아끼지 않았다. ‘할 만큼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선교사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분노와 절망감을 갖고 이 선교사는 아들에게 산티아고행을 제안했다. 아들이 머뭇거리며 받아들였다. 부자는 길을 떠났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표시하는 노란화살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카미노(순례자)가 되어 길을 걸으면서 하나, 둘 정리되는 것이 있었다. 지난 시절동안 내려놓지 못했던, 버리지 못했던 무수한 것들이 생각났다. 인간으로서, 선교사로서 집착이 있었다. 사역에 대한 집착, 가족에 대한 집착, 특히 아들에 대한 집착...

‘산티아고는 길이며, 숲이고, 낙엽이며, 바람이다. 산티아고는 우리 안의 성전 바깥에 있는 마지막 화살표이다.’(‘노란화살표방향으로 걸었다’에서)

길이고, 숲이며, 바람인 산티아고를 향해 가면서 집착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내려놓게 됐다. 인생의 시제는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며칠 동안 벌판을 걸어야 했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부자는 걸었다. 아들이 앞서 나갔다. 그 뒤를 아버지가 따랐다.

너무 힘들어 오직 걷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왼발, 오른발’만 생각했다. 그때 아버지는 문득 앞서 걷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들의 뒷모습! 아들의 뒷모습이었다. 아, 거기서 그는 처음으로 아들의 내면을 깊숙하게 보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정한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앞서서 터덜터덜 걷고 있는,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에서 ‘아들’을 발견했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들의 모습이었다. 거기서 녀석의 고민과 좌절을 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난 시절, 아들을 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들의 외면에서 나오는 행동만 보았다. 수건 바깥쪽의 모습만 보았다. 아들 그 자체를 보지 못했던 지난날을 회개했다.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아들에게 투영하려 했던 것을 통탄했다. 수많은 바람과 가짐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내면이었다. 바람과 가짐을 통해서만 아들을 보았다. 그러나 산티아고 길에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자기에게 필요한 아들은 오직, 아들 그 자체만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아들 자체만을 사랑하게 됐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하나님을 생각했다. 그 분은 불량품, 부랑아와 같은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거둬주신 하늘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품질로 따지면 도저히 그 분의 아들이 될 수 없는 자신을 하늘 아버지는 사랑으로 받아주시지 않았던가. 그랬다. 지나온 삶을 생각하니 세상은 자랑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그 분의 은혜로만 사는 것이었다.

사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항상 열매를 생각했다. 결실 있는 사역을 하고자 했다. 자신이 싱가포르에서 하는 선교사역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여겨졌었다. 산티아고 길의 벌판을 갈때의 일이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먼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벌판 한복판에 음식물을 나눠주는 사람이 보였다. 그 스페인 사람은 물과 먹을 것을 지친 순례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때 이 선교사는 깨달았다. “아, 저런 일을 평생 하다가 가도 되겠구나. 저것이 바로 사역이구나. 저 일을 하는 자체가 은혜요, 기적이구나.‘

‘오직 하나님의 뜻이 통과되는 통로’로서 살겠다고 결심할 때에 거칠 것이 없었다. 주저할 것이 없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주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역에 대한 ‘마음의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 역시 기적이었다.

지금 이 선교사의 아들은 댄스 연습소에서 교습생으로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선택한 일이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산티아고 길, 그 길은 화해의 길이었다. 아들과의 화해, 사역과의 화해, 하나님과의 화해를 향한 카미노의 길이었다.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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