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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나됨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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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됨을 반대한다

- Sergei 선교사(모스크바)


무슨 반동인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하나됨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한국 현대선교의 중요한 주제이며, 하나됨은 대세이고 시대적인 흐름이다. 그런데 하나됨을 반대한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하나됨이 구호가 아니고, 선교 세미나의 단골 메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됨의 의미도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됨만 주문하고 있으면 된다는 식인데 한번 생각 좀 해 보자.

첫째, 기본적인 생각이나 신학 이론의 구분도 없이 무조건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을 반대한다. 예를 들어 현지에서 선교사들의 모임을 갖게 되는데, 회원 중에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이라든가 윤리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도 하나됨과 포용이라는 혹은 회원 확보 차원에서 과거 청산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함께 하자는 것이 어떤 자들의 이익에 따라 밀어붙이는 것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둘째, 바른 신앙이나 윤리 도덕이 구분되지 않는 하나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리의 구분도 보편적인 방법보다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이론을 정리하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반적인 내용에 대하여서는 누구나 공감하고 아는 바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하나됨이라는 명분으로 연합을 추구하는 것을 어찌 하나됨이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하나됨은 길거리에 사람들이 온갖 것을 버려 모아놓은 쓰레기통이지 진정한 하나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값싼 은혜가 윤리의 기본선도 무너뜨렸다.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면서 탁월한 이기심이 분명한 죄도 은혜로 처리한다. 공의와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오직 저급한 은혜로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린다. 바른 것을 말하고 일을 분명히 하려는 것은 은혜가 없는 것이고, 죄도 적당하게 덮어주고 넘어가면 마음이 넓고 사랑이 많은 것으로 착각하는, 변질된 기독교의 문화가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셋째, 요즘 WCC 국제대회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혼란 속에 빠져 있다. 보수와 진보,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단들과 충돌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함께 포용하고 하나됨을 추구하는 자들은 쌍수를 들어서 환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범신론적인 종교혼합주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주님의 재림 등의 기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에도 동의하지 못하는데, 종교는 달라도 구원은 하나라는 종교혼합주의, 신앙의 기본 골격을 포기하고 시대정신인 하나됨이라는 명분으로 연합한다는 것인가? 하나됨을 이렇게 오용하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나됨의 의미

진정한 하나됨이란 진리 안에서(in) 연합된 것이다. 신앙을 함께 고백하는 무리들의 연합, 신앙 공동체를 통하여 복음의 역사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를 지키고, 그 믿음을 가질 때 교회는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진정한 하나됨을 이룰 수 있다. 신학적 다원주의나 종교다원주의를 하나로 묶어 하나됨이란 이름으로 연합을 추구하고 시도하는 것은 하나됨이 아니다. 이것은 구호로는 가능하나 실제적으로는 동상이몽인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우리는 하나됨과 연합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러나 하나됨이란 명분이 진리를 왜곡하고, 윤리와 도덕을 넘어설 수는 없다. 교회의 본질인 거룩성을 무시할 수 없다. 하나됨이 중요하지만 거짓된 인격을 용납할 수 없고, 지나치게 이기적인 인격을 포용할 수 없다. 하나되기 위하여 거짓을 도외시한다면 필자는 차라리 하나됨을 포기하겠다.

흔히들 사역이냐 관계냐의 문제를 가지고 많은 논란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혹자는 관계를 위하여 사역을 포기하라고 한다. 좋은 의도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비싼 달러 투자하여서 일하도록 보내놓았더니 관계만 잘 유지하고 친교만 하면서 사역에는 아무런 결과가 없다면 무익한 종이라 책망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사역에 치중하여 사람과의 관계도 무시하고 일 중심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것 또한 합당치 못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기본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도저도 어울리지 않다고 본다.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니, 의식을 가지고 하나됨을 추구하여야 한다. 필자는 기독교의 성경과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기독교 유산을 잘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면에서 보수주의자이고, 성경에 근거하여 신학과 신앙과 교회 생활을 바르게 고쳐 나가는 데 있어서 개혁주의자이다. 하나됨도 여기에 근거한다.


하나됨의 방법

하나됨의 기본은 소통이다. 소통이란 상호 이해와 합리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에딘버러 100주년 동경대회는 “경쟁”을 넘어서 “연합으로” 하나됨의 선교를 주제로 하였다. 일에 있어서는 합립성을 바탕으로 서로 통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할 때에는 불합리한 헌신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세속사는 갈등과 대립에서 증오와 분노, 정죄와 단절의 수순을 밟는다. 신앙안에서 하나됨을 이룬다고 할 때에는 소통으로 세속화의 길을 막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소통은 기본이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소통이 막히면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소통의 목표는 공감이다. 소통은 관계회복으로 나가는 길이다. 소통이 없는 조직은 퇴보하게 된다. 요즘 잘 나가는 전문그룹 리더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소통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의 민주화, 선진화가 가져다 준 결론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 지도자의 필수조건은 소통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소통은 변화를 시도하는 일이다.

필자는 모스크바에서 살면서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통이 안되는 일방적인 구조라는 데 있다고 본다. 어디를 가나 꽉꽉 막혀있는 것이다. 국제공항에 입국하면 모두가 작은 공간에 갇힌다. 그리고 적어도 두 시간 동안 불통에서 고통과 두통을 맛보아야 한다. 공공기관 사무실도 모두가 폐쇄적이다. 창문 하나를 내 놓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대정신은 소통인데 이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 있어서 세종시와 4대강, 천안함으로 인하여 갈기갈기 찢긴 분열, 극단적인 분파주의, 진보에서 보수로, 보수에서 개혁으로, 이러한 시대정신을 하나로 묶어 나간다는 것은 가능할까? 서로가 한 걸음씩 물러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면 이것이 바로 하나됨을 이루는 길이라고 본다. 즉 의지적(意志적) 소통과 의지적 양보가 하나됨의 길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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