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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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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이태형 부장 (국민일보 아이미션라이프부) 


최근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라는 책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 제목인 ‘정의’(Justice)를 활자화 한 것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샌델 교수의 정의론 강의는 하버드대에서 20년 연속 최고의 명 강의로 꼽혔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매력적인 제목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했을 주제이기에 친숙함도 있다. 이 주제는 특히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다. 정의란 말은 남성들의 마초 본능을 자극한다. 한 대형서점의 집계결과 이 책 구매자의 70% 가까이가 남성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샌델 교수는 먼저 상식적이고 친숙한 질문을 던진다. 가령 ‘공동체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에서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낙태나 안락사, 장기 매매 등은 허용해야 하는가’ 등.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일단 혼란스럽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경우 옳은 행위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근거와 그 ‘근거의 근거’가 되는 원칙을 찾으라고 한다. 다음으로 그 원칙을 반박하는 상황을 고려한 이후에 정의가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땅에서 정의는 철저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 쪽에서의 정의가 다른 쪽에서 불의로 둔갑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의 온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옹호하는 세력들과 소위 ‘정의로운 전쟁’을 벌였다. 이슬람 전문가인 미국 풀러신학교의 우드베리 교수는 ‘정의로운 전쟁’이야말로 넌센스라고 말한다. 과거 미국의 편향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을 ‘심각한 불의’라고 판단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정의의 회복을 위해 테러라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정의는 함부로 쓸 수 없는 단어라는 주장이다. 거창하게 국가간 이야기를 떠나서 다양한 일상의 분야에서도 정의의 문제는 늘 제기된다. “그건 올바르지 않아!”라는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며, 듣고 있는가.

성경에서 의(義)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가 디카이오수네(dikaiosune)다. 이시대의 기독 지성인 남가주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댈러스 윌라드 박사를 몇 차례 만났었다. 그에게서 들은 내용 가운데 뇌리에 남았던 것이 디카이오수네였다. 그는 세상이 말하는 정의와 성경이 말하는 의, 즉 디카이오수네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크리스천들은 이 디카이오수네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윌라드 박사의 지론이다. 

윌라드 박사가 말하는 디카이오수네는 그의 탁월한 작품인 ‘하나님의 모략’에도 나온다. 책에서 그는 디카이오수네를 ‘한 사람을 진정 옳거나 선한 존재가 되게 해주는 그 무엇’이라고 풀이한다.

책 내용을 옮겨본다. “창세기 15장6절은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디카이오수네)로 여기시고.’ 이사야에도 있다. ‘우리의 의(디카이오수네)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64:6). 아모스에서도 볼 수 있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디카이오수네)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5:24) 바울에게 있어 예수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다키이오수네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롬1-8장). 하나님이 ‘진정 선하신’ 분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의 인격과 우리를 위한 죽으심이다.” 

디카이오수네를 ‘한 사람을 진정 옳거나 선한 존재가 되게 해주는 그 무엇’이라고 풀이할 때, 그 선함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통해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개인의 신념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결과의 산물일 수 있는 이 땅의 정의와 디카이오수네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시때때로 한국교회에서 분쟁의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한 대형 교단에서도 정의란 이름 하에 세상 못지않은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각자가 서로의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 교단이 생산하는 뉴스를 접하면서 ‘과연 교회는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교회는 어떠한가. 목사와 장로 간에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교회도 적지 않다. 당회에서 “그건 옳지 않아요!”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럴 때 성도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과연 무엇이 정의이며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성도들이 다양한 교회의 문제를 보면서 딜레마에 빠질 때에 앞서 이야기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먼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질 경우 옳은 행위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라.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근거와 그 ‘근거의 근거’가 되는 원칙을 찾으라. 다음으로 그 원칙을 반박하는 상황을 고려한 이후에 정의가 무엇인지 판단하라. 여기에 윌라드 박사가 말한 디카이오수네를 생각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이라면(교단의 중심인물이건, 목회자건, 장로이건, 평신도이건) 핏발선 눈으로 ‘정의’라는 단어를 쓰기에 앞서 자신 안에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윌라드 박사의 조언에 특히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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