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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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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이유 
 
- 도원욱 목사 (서울 한성교회)
 

43세의 변호사인 스파포드는 아내 및 5명의 아이들과 함께 미국 시카고 근교에 살고 있었다. 그는 1871년에 외아들을 잃었고, 몇 달 후 큰 화재로 전 재산마저 잃어버렸다. 그 2년 뒤 아내의 건강을 위해 가족 모두가 유럽 여행을 계획했으나 예기치 않은 일로 아내와 네 명의 딸만 먼저 배를 타고 출발하게 된다. 1873년 11월 22일, 그 배는 영국 선박과 충돌해 12분 만에 침몰했고 226명이 죽었다. 아내는 구출되었지만 자녀들은 불행히도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아내가 보낸 전보를 받고 네 딸을 삼켜버린 비극의 사고 지역을 지나면서 지은 시가 바로 ‘내 평생에 가는 길’로 잘 알려진 찬송가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이다. 스파포드를 강하게 붙들고 있었던 그 평안, 그 비극적이고 참담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선포할 수 있었던 그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평화와 행복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 마음의 정원에 감사의 나무를 심으라.’ 어느 철학자의 말이다. 감사는 행복과 평안의 원천이다. 환경이나 자원, 조건 등만이 감사의 조건은 아니다. 이미 내게 주어진 복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무한 공급받고 있는 공기, 물, 햇볕은 하나님께서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믿는 자에게나 그렇지 않은 자에게나 똑같이 내려주신 선물이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넘치도록 감사해야 한다. 너무도 기초적인 감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감동이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더 큰 감사의 이유는 바로 그분의 성실하시고 인자하신 성품에 있다.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일관적인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이미 죽은 우리의 영을 대신하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죗값을 치르셨다. 우리의 죽은 영을 다시 살리셨다. 영원히 사단의 종으로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자유케 하시고 양자 삼아주셨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착해서도 아니다. 그냥 그분의 일방적인 사랑의 언약 때문이었다. 그 언약으로 인하여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녀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를 주셨거니와 더 나아가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삼아주시고 ‘의인’이라 칭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던 것이다. 바로 그 은혜의 사건이 평생 감사의 제목인 것이다. 내가 구원받을 자격이나 있는 존재였던가.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시며 또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 이어질 영원한 안식처까지 예비해두지 않으셨던가.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구원의 계획과 실행을 하나씩 알아가게 되면 이 땅에서 불평거리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변하지 않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날마다 새로운 감사를 낳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의 한낱 괴로움을 이기고 인내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이 땅에서의 감사 조건들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그 구원의 감사는 믿는 누구에게든지 공평한 것이며 살아가는 날 동안 드리고 또 드려도 모자란 거룩한 사건이다. 전하고 전해도 모자란 복된 소식이다

그 감사를 지금 선 자리에서 드리기를, 또한 선포하기를 바란다. 그 감사로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한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100:5)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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