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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리고성’ 라합의 거짓 보고,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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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성’ 라합의 거짓 보고, 어떻게 봐야 하나

동방박사 세 사람이 연상되는 거짓말 [2010.07.10 07:13]
 
-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2: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6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여리고왕은 라합을 자국 백성으로 여기고 정탐들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라합은 여리고왕 편에 서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마음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가 돼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언제 하나님을 믿었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남으로(롬 10:17) 그녀는 누군가에게서 이스라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일과 아모리 두 왕이 멸절된 사실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위대하신 분이심을 믿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또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던 가나안 왕국들이 멸망할 것을 알았다.

여기서 많은 학자들이 라합이 거짓을 말했다는 사실을 갖고 논란을 벌인다. 거짓말은 어찌하든 좋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외적으로 보면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 거짓은 사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 의하면 그녀의 일은 위대한 믿음의 행위였다. 그리고 야고보는 그녀가 믿음의 행위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거짓말을 한 행동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인가? 이러한 라합의 행위에 대하여 우리는 피상적으로 그녀의 말이 거짓인가 아닌가를 볼 것이 아니라 그녀의 행동이 믿음을 따른 것인가 아닌가를 봐야 한다. 하나님은 그녀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지 거짓말을 의로 인정하신 것은 아니다.

첫째, 그녀의 행동은 생명을 건 용감한 행위였다. 그때 그녀가 정탐을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이 탄로났다면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위급한 순간에 자신의 안전과 평안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목숨을 건 행동 자체가 의롭다 함을 얻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믿음을 증명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믿었는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들을 때 그녀는 믿음의 눈이 열려 과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살아계시고 위대한 상천하지의 하나님이심을 믿었다. 그녀는 가나안 땅의 참 주인이 가나안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상천하지의 하나님(the Lord God in heaven above and on earth beneath)이라는 말은 그녀의 고백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상천하지의 하나님으로 믿었고, 어찌하든 그 하나님을 위해 일했다. 그러한 믿음이 그녀로 하여금 생명을 건 모험을 하게 했다. 어떤 학자들은 구속을 상징하는 붉은 줄을 매달아 멸망에서 구출될 때까지는 라합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말하지만,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는 그녀의 붉은 줄을 매달은 행위를 말하지 않고 정탐꾼을 숨긴 일을 믿음의 행위라고 했다. 물론 그녀가 구속된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줄로 말미암은 것이다.

라합은 두 정탐꾼을 적국의 스파이로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로 여겼다(여 6:25, 약 2:25). 그녀는 그들을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헬, angelos)로 여겼다. 그녀는 가나안왕과 자신의 민족이 자신의 말 한 마디로 끝장이 난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스라엘은 자신의 행동으로 전쟁에서 큰 승리와 유익을 취할 것도 알았다. 그런데 거기서 그녀는 기꺼이 자신을 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과 일치시키고 그들의 일부로 간주했다. 이것이 그녀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근거다. 한 마디로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통해 그분을 믿은 것이다.

당시 그녀가 가나안 왕이 보낸 군사들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에게는 다른 지혜나 선택이 없었다. 그녀는 어찌하든 그들을 살려야 했고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 쫓아온 군사들을 따돌려야 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 행동은 겉으로는 거짓말이지만 내적으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행한 불구대책의 일이었다. 생각해 보라! 그들을 잡으러온 가나안왕의 군사들이 과연 참된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자들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잡아 죽이려 하였다.

이 이야기는 주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때 헤롯 왕은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자기도 가서 경배하겠노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왕의 말은 거짓이었다. 동방박사들은 갈 때 다른 길로 돌아가고 왕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왕은 박사들에게 속았다고 분개하면서 연령을 추산하여 많은 아기들을 죽이고 말았다. 거기서 동방박사들은 당연히 왕과의 약속을 지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한 마귀적인 사람과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으며 참된 상황을 말해줄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한 위기의 일은 일생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사실대로 말할 때 사탄에게 큰 빌미를 주게 된다. 내 입의 말 한 마디로 참된 주의 종이 악한 자에게 죽임당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일제시대와 공산당 치하에서 이러한 일들이 많았다. 비단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애국지사들도 이곳 저곳에 숨어있었다. 가령 그들이 어느 시골집에 가서 숨겨달라고 부탁했을 때 당국에서 수색이 나오면 사실대로 말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다른 말로 둘러댈 것인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고 아름다운 것일까?

당신은 거짓말을 안해서 평안할지 모르지만, 한 사람은 당신 때문에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때의 거짓말을 ‘the lesser evil’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악이나 거짓이라 해도 다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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