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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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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 송병구 목사 (큰사랑교회) 


한 농부가 아내의 동의를 얻어 더 좋은 말과 바꾸려고 키우고 있던 말을 끌고 시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살찐 암소에게 마음을 빼앗겨 말과 바꾸었다. 또 길을 가다가 그 암소를 양과 바꾸었고 조금 더 가다가 양을 거위와 바꾸었으며 또 그 거위를 붉은 벼슬을 가진 수탉과 바꾸었고 마지막으로 수탉을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었다.

날이 저물어 여관방에서 귀족을 만났는데 농부의 사연을 듣고는 “집에 돌아가면 부인이 화가 나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아로 말했다. 그러자 농부는 “참 잘했다고 할 것이오”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귀족은 만약 그렇다면 자기가 가진 금화를 몽땅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 집에서 그간의 사연을 들은 농부의 아내는 “그렇잖아도 식초를 만들기 위해 썩은 사과가 필요했는데 참 잘되었군요”라고 말했다. 결국 농부는 내기에 이겨 부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동화이다. 

누군가가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 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농부의 허물을 가리워준 아내의 모습에서 상큼한 무공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를 흘리셨다. 끝 없는 용서,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의 본체이시다. 또 누가 믿음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옛날 중국 북방의 오랑캐들이 사는 호지와의 국경에 총명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까닭도 없이 노인의 말이 호지로 달아나 버렸다. 사람들은 그 딱한 사정을 위로해 주기 위해 찾아왔다. 그러나 노인은 조금도 걱정하는 빛이 없이 말했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 없겠지요”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호지의 좋은 말을 벗삼아 함께 돌아왔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기 위해 왔다. “이게 또 무슨 화근이 될지 모르지요”라며 노인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호지에서 온 말을 타다가 낙마하며 그만 불구의 몸이 되고 말았다. 이 때 노인은 “이 일이 또 어떤 다행한 일이 될지도 모르지요”라고 찾아온 마을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노인은 그야말로 천하태평이었다. 

그 후 1년쯤 지나 호인이 쳐들어 왔다. 몸이 성한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가 싸우다 대부분 전사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였으므로 무사했다고 한다. 화가 오히려 복이 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일의 아름다운 결과를 믿고 울퉁불퉁한 과정을 잘 참고 또한 견디는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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