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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교하는 교회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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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하는 교회가 되라

-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교회의 사명-본질

성경을 어느 관점에서 살피느냐? 사람들의 관심 분야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한 가운데 핵심적인 하나의 관점은 구속사적인 관점이다. 성경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생명을 구원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의 결론은 전도와 선교로 귀결된다.

사도행전의 심장은 전도와 선교이다. 행전의 절반의 내용이 선교이다. 복음서의 초점은 주님은 잃은 자를 찾으러 오셨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구원이다. 이것은 성경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인식하고 있는 교회, 전도와 선교의 본질에 충실한 교회들이 많이 있어 소망이 있다. 사회를 향하여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여 복음의 문을 여는 교회들이다.


교회 존재의 목적을 인식하라

교회의 존재 목적은 근본적으로 전도와 선교이다. 이를 위하여 모든 기관의 활동과 제자훈련과 예배와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경적 선교를 공부하여야 한다. 특히 목회자가 바로 공부하여야 한다. 교회의 운영은 한 사람의 목회자에 의하여 대부분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기의 관심분야가 아니라고 하여서 외면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외면이다.

개인의 관심이나 취향으로 인하여 성경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행위이다.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어떤 자들은 교회사역을 제자훈련에 목숨을 건다고 말한다. 그 제자훈련의 목적과 결론이 무엇인가? 사람을 구원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곧 전도와 선교로 더욱 확고하게 나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제자의 삶이고 훈련이 아닌가? 여기까지 도달하여야 한다.

예배에 생명을 걸었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그것의 목표는 무엇인가 결국은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의 결론은 무엇인가? 역시 전도와 선교로 귀결된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적인 사항이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관점이라서 그런가?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관점이라고 해야 한다.

새벽기도에 목회 승부를 걸고 또는 전도폭발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두 날개로 뻗어 나가는 것도 결국은 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이지, 그것이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활동의 결론은 복음의 역사를 완성해 나가는 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종결되며, 그들을 다시 교육하고 훈련하여 전도인으로 양육하는 과정이 신앙생활인 것이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 중 소수의 선교에 관심 있는 자들을 빼면, 대부분 방관자의 입장에 서 있다. 우리 교회도 힘들고 어려운데 무슨 남의 나라까지 선교한단 말인가? 목회자 사례하기도 어렵고, 교회 운영도 어려운데 무슨 선교인가?라는 입장이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본질까지 외면하는 형태인 것이다. 어떤이들은 협력하여 한두 구좌 헌금하는 것으로 선교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에게 어쩔 수 없이 또는 체면상 선교비 보내는 경우이다.

목회자들의 이러한 신학적인 지식으로 인하여 결국 한국교회 소수의 10% 정도만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에 참여하고, 그 소수가 한국교회의 선교의 전체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들러리로, 자기 교회 운영하고 교회 빚 갚기, 혹은 건축을 위하여 준비하느라 정신 없는 상태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영세성을 면치 못하며, 종교 이기주의로 비쳐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일학교 기관의 부목회자들의 선교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더욱 심각하다. 자기 관심 분야 외에는 전혀 문외한 내지 무관심이다. 물론 어떤 이는 아르바이트로 사역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봉사하는 입장이니, 잠시 머물다 떠나갈 것인데 무슨 선교에까지 관심이 있겠는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고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여야 하는데,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좀처럼 사용하지를 않는다. 생각이 없는 것이다. 선교사가 방문하여도 주일학교 기관에 초청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선교에 대한 기도나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앞으로 한국 선교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하겠는가? 자라나는 세대에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가장 큰 문제이다.


선교 인식의 전환 

선교의 잘못된 인식도 크게 개선되어야 한다. 선교에 열심인 교회들은 많은 경우 교회 성장의 방편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선교를 엄청 강조하고 홍보도 행사도 많이 하지만, 정녕 속 깊이 들어가 보면 선교에 대한 바른 방향을 잡지 못하고, 돈이 좀 있으면 하는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껍데기만 가지고 열심히 떠들며 교인들의 지성과 감성을 깨우지 못하고 들볶는 것이다.

선교는 교회의 외적인 과시가 아니다. 선교사 몇 명을 파송하였나 하는 것으로 교회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목회자들의 경우 그러한 일이 많다. 그래서 주보에 선교사 명단을 올리고 세를 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 또한 커다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선교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며 주님이 책망하였던 외식하는 자들에 포함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목회자의 관심 여하에 따라서 선교가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다 보니 선교를 잘 하던 교회도 목회자가 사임하거나 다른 교회로 가게 되면 그 교회의 선교도 단번에 단절이 되고, 아니면 목회자가 아는 사람들로 전격 후원이 바뀌게 되는데, 이것은 현지에 나가있는 선교사의 목줄을 죄는 일로 이어진다. 교회는 예의도 없고, 기본도 안되어 있는 일들이 종종 있다.

선교는 교회의 신학과 사명이 되어야 하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선교관을 바로 세워 조직화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바뀌어도 행정적인 조직은 흔들림이 없어야 교회가 성장한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총리들이 해를 넘기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정권이 바뀌어도 행정기관의 업무나 조직은 변하지 않고 자기들의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정권은 춤춰도 나라는 돌아가게 만드는 조직인 것이다. 교회의 조직도 이러한 기본이 있어야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교회는 세상의 소망이요 유일한 빛이다. 모두가 물질만능주의 시대로 빠져들어가고 있을 때에 저들에게 물질보다 영혼이 소중함을 일깨울 존재는 교회밖에 없다. 세상의 시대정신을 돌려놓고 방향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것은 교회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생명이다. 존재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모른다. 이 주신 사명을 바로 알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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