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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시 옥한흠 목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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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옥한흠 목사를 생각한다 

- 이태형 부장 (국민일보 아이미션라이프부)


사랑의교회 원로 옥한흠 목사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아련하게 했을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한국 복음주의권의 대표적인 목회자로 사역해 온 옥 목사의 쾌유를 바라는 중보의 기도가 국내외에서 드려지고 있다. 

지난 시절 언론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옥 목사다. 물론 그와 동고동락 하면서 수많은 영적 추억을 쌓은 믿음의 동지들이 있을 것이다. 그를 마음속으로 흠모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언론인이란 특권 때문에 여러 차례 그를 만나 직접 인터뷰를 했다. 해외에 함께 나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나 역시 옥한흠 목사에 대한 추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최근 수개월 전에 옥 목사의 사무실이 있는 국제제자훈련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1층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누가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었다. “아니, 유(그는 가끔 사람들을 유(You)라고 부른다) 여긴 어떻게 왔어?” 

다소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옥 목사였다. 그는 과거보다 몰라보게 말라 있었다.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련함을 느꼈다. 세월을 느꼈다. 잠시 사무실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 가진 나와 옥 목사와의 만남이었다. ‘마지막 만남’이란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또 한번 만나서 목회와 인생, 참된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1998년 국민일보에서 ‘목회자 24시’란 코너를 시작했다. 첫 번째로 옥 목사의 스토리가 나갔다. 옥 목사의 입원 소식을 듣고 12년 전 썼던 그 기사를 읽어보았다.

기사의 리드(시작 글)는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는 깨우는 사람’이었다. ‘깨우는 사람’ 옥한흠 목사. 수많은 사람들을 깨웠던 그가 지금 누워 있다. 인간적인 소망은 그가 깨어나기를 바란다. 깨어나서 다시 한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참 신앙과 목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기를 소망한다. 

아래는 98년 가을에 썼던 기사 전문이다.


<사랑의교회 옥한흠목사(60)는 ‘깨우는 사람’이다.>

지난 30년동안 그는 평신도를 깨우고,젊은이를 깨웠다. 장애인과 여성을 깨우고,일본 열도의 목회자들까지 깨웠다.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면서부터 그가 하루종일 하는 일 역시 깨우는 작업이다.직접 순장들을 제자훈련시키고 젊은이들을 ‘십자군병화’하는 데 진력한다.

20년전 서울 서초동에서 시작한 사랑의교회. ‘새로운 교회’ ‘좋은 교회’의 대명사로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사랑의교회 1만4000여 성도들은 옥 목사를 통해 눈을 떴다. 사랑의교회 성도들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많은 평신도들이 자신이 목회의 대상자가 아니라 교회의 의미있는 사역자임을 깨닫게 됐다. 베스트셀러가 된 ‘평신도를 깨운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젊은이여, 교회로 오라. 여기 복음이 있다”고 외친 옥 목사에게 많은 청년들이 환호했다. 20여년 전 깬 젊은이들이 지금 우리사회 각계에서 복음의 기치를 들고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사랑의교회 이랜드 구역장’이라고 말하는 이랜드 박성수 사장도 그를 통해서 눈을 뜬 젊은이였다.

옥 목사의 깨우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그는 한국 교회를 깨우고 우리 사회를 깨우고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복음의 교리와 복음에 대한 신학은 있어도 복음자체가 빠져있다고 질타한다. ‘교회를 깨워야 사회가 눈을 뜬다’는 확신 속에서 옥 목사는 교회갱신협의회를 이끌고 있다.

‘깨우기 위해’ 그는 평신도 제자훈련에 몰두한다.그의 제자훈련에 대한 집착은 ‘몰두’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차라리 ‘미쳤다’는 말이 적절하다. 사랑의교회 부교역자들은 그가 제자훈련에 관한 목회철학을 전개할 때면 “광인(狂人)의 불꽃이 눈에 발한다”고 말한다. 김영순 사모조차도 그를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옥 목사는 제자훈련에 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첫시간에 ‘광인공식’ ‘광인론’에 대해 말한다.신념과 열정, 비전이 합쳐질 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광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교회의 역사는 제자훈련의 역사다. 1대1 성경공부를 통해 제자화된 사랑의교회 성도들은 모두 일당백의 사역자로 거듭났다.

옥 목사를 만나보면 단아한 모습의 그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인물임을 느끼게 된다. 편안한 외모와 부드러운 말씨에서 ‘어질다’라는 표현도 떠오른다. 그의 농담은 상대방을 늘 편안하게 만든다. 별다른 카리스마가 있는 듯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난 시절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사람들 대부분이 옥 목사에게 ‘아련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강한 카리스마의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홍정길 하용조 이동원 목사 등 80·90년대 복음주의 운동을 이끈 소위 ‘4인방’의 맏형으로서 옥 목사는 한국교회에 유형 또는 무형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언뜻 옥 목사는 고고한 선비처럼 보이지만 외모처럼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거제도에서 태어난 그의 인생은 지독한 가난과 병마 등 고통스런 삶의 연속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폐결핵과 만성 전립선염으로 고생했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와 같이 그의 저술과 설교 속에 유난히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지나온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했다. 고통을 통해 욥과 같은 깊은 신앙과 영성을 유지했다. ‘오직 은혜’라는 말이 그의 평생을 통한 신앙고백이다.

균형과 능력은 옥 목사를 설명할 수 있는 또다른 단어들이다. 그는 제자훈련을 강조하면서도 영성에 대한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산을 좋아하되 강을 싫어하지 않는 균형감각이 있다. 강한 말씀의 능력도 갖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가 위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허수 허세 허상 등 ‘3허(虛) 현상’이 지금의 한국교회에 퍼져있다고 개탄한다. 교회는 먼저 출석인원부터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바로 살면 세상이 변한다”고 외친다. “사랑의교회는 한국교회가 걷기를 두려워하는 길로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89년 쓰러져 1년간 요양을 했던 옥 목사는 지난 3월 또 한차례 안식에 들어가야 했다. 만성 전립선염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옥 목사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한국교회에 돌았다. 그러나 그는 건강해 보였다. 그는 요양중에도 두 권의 책을 집필하는 의욕을 보였다.

옥한흠 목사를 두고 ‘옥(玉)에도 한가지 흠은 있을 것 같다’라는 누군가의 조크에 그는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이 흠”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목회만은 철저했다고 덧붙인다. 여객기 조종사가 자신의 성품과는 상관없이 조종만은 철저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양을 사랑하는 목자와 목자를 신뢰하는 양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가을날 사랑의교회 마당에서 순장들과 정겹게 대화하는 옥 목사를 지켜보는 기자에게 한 성도가 말했다.

“목사님이 계셔서 우리가 행복하다는 말을 꼭 써주세요.” 

양들에게 사랑받는 목회자. 옥 목사야말로 우리시대의 가장 행복한 목회자가 아닐까.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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