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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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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 
 
- 김성일 작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고 따르는 것은 그분이 전지전능하시며 사람을 사랑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어서 오래 참으시고 합리적인 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가 너무 과격하고 참담한 것이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의아하게 한다. 하나님의 앞을 떠나 악하게 된 사람들을 홍수로 다 쓸어버린다는 대목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 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창 6:7) 

얼마 전 어떤 단체에서 이 대목을 가지고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이 왜 스스로 창조한 것을 심판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은 왜 악해질 수 있는 것을 창조했다는 것인지 교회나 신학자들도 이를 설명하려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역시 논리적 또는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풀어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요일 4:8)

감히 하나님과 사람을 비교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람이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므로 사랑을 해본 사람의 성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사람과 진실한 사랑을 하기 위해 가장 위험한 선물인 자유를 주셨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범위로만 보면 하나님은 처음으로 사람이라는 특정 대상을 사랑하시게 되었고, 그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었도다”(사 5:4)

하나님은 그 전능하신 솜씨로 좋은 포도를 맺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제적인 정보를 입력한 피조물과 진실한 사랑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 때문에 참담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당하신 하나님은 마치 첫사랑을 거부당한 소년처럼 당황하셨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 

하나님은 이 굴욕적인 사랑을 포기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낙심하여 한숨을 쉬는 그분을 크게 격려하는 한 줄기의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이 구절을 원문대로 해석하면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홍수의 격랑 속에서 다시 용기를 내신 하나님은 그 사랑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급한 마음을 달래시며 기다림의 긴 사랑을 시작하셨다. 즉 사람들을 흩어져 살게 하시고(창 9:7),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그 독생자를 통해 기억해내어 스스로 찾아오게 하신 것이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6∼27)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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