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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리’의 공간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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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의 공간적 의미 
 
- 최문자 총장 (협성대학교 총장)
 

인간의 무의식은 공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서랍, 상자, 장롱, 의자 등 이것들의 공간은 얼마나 많은 심리적 의미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집’이나 ‘방’ ‘고향’이라는 공간은 문학 속에서 특별한 문학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얼마든지 작용할 수 있다. 

필자는 오늘 ‘자리’가 갖는 암암리의 공간적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각각 자기 자리가 있다. 이 자리는 일종의 이미지를 끄는 힘이 있다. 예를 들면, ‘그 자리에 앉는다’라는 것은 ‘그 자리에 앉지 않는 것’에 비해 다른 의미와 힘을 갖는 것이다. 

교회 예배 시간에 관심을 가지고 좌석을 한번 살펴보면 정한 바 없지만 교인들은 늘 자기가 앉던 자리에 가서 앉는다. 안내자에 의해 자리가 바뀔 때에는 매우 불편한 마음을 표출하기도 한다. 또 공식적인 회의에서는 그것이 더욱 선명하게 구별되며 힘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매우 큰 교회 담임목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마침 사모님도 같이 와 계셨는데, 사모님은 목사님이 늘 앉아서 기도하시거나 집무하시는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의자를 빙빙 돌리면서 전화를 받고 계셨다. 

나는 좀 떨어진 소파에 앉아 목사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그 방을 나왔지만 그때까지 사모님의 전화는 계속되었고 목사님은 조금도 그것을 불편해하지 않으셨다. 

분명 그 의자는 목사님의 공간이며 목사님의 기도와 사유와 삶과 추억과 개인적 몽상과 연결된 통합된 의미의 자리였다. 이러한 일반적 몽상이 낯선 자의 침입으로 깨어질 때 인간은 불편해진다. 자리가 주인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반대의 예도 있었다. 성가대 지휘하시는 노 교수님이 편찮으셔서 몇 달간 쉬게 되었다. 노 교수님은 자기 제자에게 대신 지휘를 맡기셨다. 제자가 첫 지휘하던 날이 생각난다. 선생님이 입으시던 지휘 가운 입기를 권할 때 제자는 절대 사양했고, 성가대 대원 가운을 입고 맡은 기간 내내 지휘를 했다. 또 자기 선생님이 서서 지휘하시던 단상에서 내려와 좀 낮은 단에서 지휘를 했다. 

자리가 가치를 표상하며 얼마나 그 가치 구별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분 같았다. 앞서 얘기한 사모님과 크게 차별이 되는 경우다. 공간은 단순히 몸담는 거처가 아니라 내밀함의 가치들이 명백한 특권을 갖는 거소이기도 하다. 

자리는 과거의 장소들이 지낸 역사이며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더할 수 없는 숙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늘 앉아 있는 자리는 앉은 자들이 연이어 살아온 추억과 휴식과 습관의 온기가 남아 있기에 미묘하여 이성적인 해석만으로는 단정 지을 수 없다. 

남의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행위한다는 것, 그리고 그걸 가볍게 생각하는 것, 이렇게 자리가 가끔 뒤바뀔 때마다 우리는 혼란이나 기쁨, 갈등 등에 휩싸이게 된다. 공간에서 이미지의 급속한 변화는 무리이다. 자리는 자리마다 잠든 추억과 불빛이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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