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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옥한흠과 유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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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과 유명환 

- 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부 부장)
 

“사람은 분수를 알고(知分) 만족할 줄 알고(知足) 그칠 줄 알아야(知止) 한다”

한학자이자 유학자인 고 산암(汕巖) 변시연(邊時淵) 선생의 말이다. 그는 70세가 되던 1994년 12월 전남 장성 산골마을로 들어가 ‘손룡정사(巽龍精舍)’라는 서당을 열었다. 그칠 때가 언제인지를 파악하고 실행한 것이다. 

지분(知分)하고, 지족(知足)하며, 지지(知止)의 삶을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힘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사실 그 힘을 휘두르기 위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절대 반지'를 휘두르고 싶은 욕구는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의 특채 문제로 사퇴했다. 외교관으로서 그가 쌓아올린 수십 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그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개인사적 비극이다. 비단 유 전 장관 뿐 아니라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이 그칠 줄 몰라서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다. 

공정한 사회는 결코 구호로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로는 대통령을 비롯해 아래로는 필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크건, 작건)을 억제할 때에 공정 사회는 보편화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깊은 죄성(罪性) 때문에 ‘그칠 줄 아는 삶’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유 전 장관 딸 특채와 같은 사안들은 사회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다. 교회에서도 역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보이는 현상에 분개하지만 막상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힘을 휘두르고 싶은 욕망이 들 것이 분명하다. 그칠 줄 모르는 죄성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별세한 고 옥한흠 목사가 우리에게 준 귀한 교훈 하나가 억제력이다. 그의 제자인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제게 고 옥 목사님은 ‘억제력’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된다는, 휘두를 힘이 있다고 마음껏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그 억제력을 그 분은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것 억제하면서 오직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광인(狂人)처럼 사셨던 분이 바로 옥 목사님이셨습니다.”

고 옥 목사 하관예배에서 둘째아들이 한 이야기가 귀에 남는다. 고 옥 목사 유족들은 하관예배에서 순서에 없던 고 옥 목사의 영정 및 관을 뒤로 두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둘째 아들은 “우리 가족이 그동안 변변한 가족 사진 한 장 없었기에 찍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 모인 여러 목사님들께서 목회관련 책 10권 읽을 때에 가정관련 서적 한권쯤 꼭 읽기 바란다”고 말했다. 아마 하관예배 참석한 분, 인터넷으로 방송을 본 분들이 어떤 장면 보다도 기억할 부분이리라. 둘째 아들의 멘트로 보아 옥 목사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항상 제자훈련 시킨다고 가정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이 점은 고인이 비난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목회 이전에 먼저 가족들을 챙겼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둘째 아들의 멘트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고 옥 목사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이찬수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옥 목사님은 평소 저에게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먼저 건강을 챙겨라. 그리고 아이들을 챙겨라’ 그분 스스로가 치열한 목회 과정에서 건강과 자녀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일종의 자책에서 나온 권면이었을 것입니다.”

이 목사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어느 날 옥 목사님의 그 말씀을 생각하다 눈물이 핑 돈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옥 목사님이 다시 목회를 시작하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건강과 자녀를 챙겨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옥 목사님이 다시 목회를 하셨다면 과연 그 두 가지를 챙기면서 사역하셨을까요. 알아도 그러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분이 자신을 위한 길을 억제하지 않으셨다면 이미 ‘옥한흠 목사’가 아니지요. 그랬다면 오늘의 사랑의교회도 없었을 것이고 저와도 별 관계가 없었을 것입니다.”

건강 챙기고, 아이들 챙기고 목회하는 것은 옥 목사 스타일이 아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으로 얼마든지 건강 챙기며, 가족들과 화려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그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을 억제했다. 당위성이 있는 일이라도 스스로를 통제한 것이다. 

이 땅에 남겨진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은 이 억제력이 아닌가 싶다. 도처에서 정의가 외쳐지고, 고위 공직자의 권한 남용이 문제가 되고 있는 2010년 9월에 우리는 심각히 고 옥 목사의 ‘억제력’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고 옥 목사가 진정 이 시대의 거목으로 존경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지(知止)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했기 때문이리라. 불행히도 한 평생 외교관의 삶을 살고 나라를 위해 봉사했던 유명환 전 장관은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고 옥 목사와 유 전 장관의 가장 큰 차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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