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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러시아 정교회 예배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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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 예배를 보면서…

- Sergei 선교사(모스크바)


러시아 주요 연대기(Russian Primary Chronicle)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키예프의 왕 블라지미르가 아직 이교도였을 때 그는 어느 종교가 참 종교인지 알고자 하여 세계 여러 나라로 사신들을 보냈다.

사신들은 처음에 볼가 강 지역의 회교도인 불가리아인들에게 갔는데, 당시 불가리아인들이 기도할 때에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들처럼 주위를 응시하는 것을 보고서 실망하여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그들은 블라지미르에게 “그들에게는 기쁨은 없고 비탄과 악취 뿐이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들은 다음으로 독일과 로마를 여행했는데, 그곳의 예배에서 다소 만족스러운 것을 발견하였으나, 여기에도 아름다움이 없다고 불평했다.

마침내 그들은 콘스탄티노플로 갔고 소피아 대성당에서 드리는 성찬예배에 참석함으로서 그들은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 “그 때 우리는 하늘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상의 어느 곳에서도 그같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묘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거기 사람들 중에 계셨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드리는 예배가 다른 모든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를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배의 아름다움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정교회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신적인 아름다움의 강조이다. 신적인 아름다움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만족시키고 영혼의 승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들의 특별한 은사라고 생각한다. 둘째 지상의 천국이다. 예배를 통하여 천상과 지상의 교회가 서로 교감하고 만나는 것이다. 지금 천상의 권세들이 우리와 함께하며, 눈에 보이지 않게 예배하고 있다. 셋째는 성찬예배이다. 이 예배를 통하여 지상의 있는 모든 것이 위대한 천상의 것들과의 관계 안에서 보이는 통찰의 장이 된다. 조지 플로로프스키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는 성찬예배의 종교이다. 교회는 무엇보다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예배가 으뜸이고, 교리와 기독교적 훈련은 두번째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결국은 이콘 신앙으로 발전하여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만져야 만족을 얻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을 본다. 처음의 목적은 글로 표현된 성경의 어려운 내용을 볼 수 있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오용되었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가끔 러시아 정교회를 방문하여 예배에 참석하곤 한다. 지금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 슬라브 언어로 진행되는 예배, 세 시간씩 서서 행해지는 예배가 어렵기만 하다. 수많은 행위로 표현되는 내용들을 잘 이해할 수가 없어 답답한 면이 많이 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경건함이 내포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개신교의 예배 상황을 보면서 시장통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행위로 불경건하고 하나님을 저급한 신으로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비판에 대하여 성경의 구원의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들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다. 그들의 예배는 아직도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는 것이고 우리들의 예배는 부활 이후의 주님을 찬양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모두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논쟁이 되는 요소이다. 우리는 한국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서 보고 배운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예배에 그냥 참석하든지 아니면 만족스럽고 감사하다고 여긴다.

세월이 지나면서 필자는 한국 개신교의 예배가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 지어진 교회와 아름다운 내부시설은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아름다운 멋을 내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예배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인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너무 시끄럽고 번잡하고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소란한 것은 디스코텍을 비교할 수 있고 밴드와 북과 드럼 최고의 음향시설로 쏟아지는 빠른 템포의 음들은 하나님 주님 단어 몇 개만 빼버리면 록음악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을 느낀다.

러시아 정교회의 악기 없는 찬양단의 노래소리는 말 그대로 천상의 소리요 천사들의 합창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신부의 외침에 응답하여 찬양단의 아카펠라는 그야말로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그 어떤 감동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찬양은 어떤 면에서 가볍고 얄팍하여 나의 마음에 즐거움을 잠깐 가져다 줄 뿐이 아닌가, 혹은 찬양을 인도하는 리더들만 즐거운 찬양인가라는 판단은 필자가 러시아 문화에 젖어가는 증거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의 예배 속에 경건을 좀 추가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세속문명으로 가득 채워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허덕이고 영혼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거기에 발 맞추어 교회에서도 흥분의 도가니로 무아지경의 상태로 몰아넣어 세상을 앞서가려는 태도는 어딘지 모르게 맞지 않는 것 같다. 진리의 소리는 아직도 세미한 가운데 들려오는 것이지 북소리와 장구소리 시끄러운 소리로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더욱 더 갈증을 느낄 뿐이다. 경건주의로 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예배 속에 경건의 요소를 더욱 더 가미하고 좀 더 창조적인 예배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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