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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물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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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맷돌 
     
-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
 

만일 다윗에게 주머니에 감춰진 물맷돌 몇 개가 없었다면 거대한 골리앗과의 대결에 위풍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을까? 그 물맷돌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선물한 힘과 사랑의 상징이었다. 다윗은 이 힘을 굳게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물맷돌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주신다. 가끔 하나씩, 때로는 듬뿍. 그러나 이 돌의 위력을 많은 크리스천이 믿지 못한다. 일생 동안 이 물맷돌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못하고 간 사람들도 많다. 

적잖은 크리스천들이 만인 앞에 크리스천인 것을 공포하기를 주저한다. 공인일 때 더욱 그렇다. 누구나 한낮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칠흑 같은 어둡고 위험이 도사린 밤의 제자가 되는 건 싫어한다. 낮의 제자들은 물맷돌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늘 즐겁고 좋은 일만 있을 때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질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가끔 예수님이 죽은 후의 제자들 행적을 생각해 본다.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종려나무를 흔들 때야 예수의 제자라는 신분은 얼마든지 자랑스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예수의 제자가 되었을 때 만인 앞에 내가 예수의 제자였음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을까. 당시는 ‘죽은 예수의 제자’라고 공포되는 순간 그가 누구이든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의회 의원이었던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는 만인 앞에 크리스천임을 알리는 장례식장에 당당히 나타난다. 밤의 제자 되기를 스스로 원하고 나선 것이다. 그도 마음속으로는 낮의 제자가 되고 싶었겠지만 밤의 제자가 되어 당당히 나타난 것이다. 

그 시대의 크리스천이나 이 시대의 크리스천이나 별반 다른 게 없다고 본다. 크리스천으로 사는 공인은 쉽게 밤의 제자가 돼버린다. 나는 밤낮 가리지 않고 제자가 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밝은 낮에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인으로 낮의 제자가 되었다가 어둡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밤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증거한다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일이 될까. 그때 위기에 쓰라고 예비해 주신 물맷돌의 힘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대학 총장, 시인이라는 공인으로 살면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소외되거나 평가절하된 적도 있다. 그러나 죽은 예수의 제자처럼 바위 속에 판 새 무덤, 자기 무덤을 예수께 드린 아리마데 요셉처럼 결단을 드리는 밤낮 가리지 않는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 

때로는 나도 크리스천의 잘못된 모습을 남들 앞에 자주 드러낸다. 일상에서 늘 기적과 영광을 체험하면서도 크리스천으로 밤낮을 가려 제자가 되려 한다면 정말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향하여 묻고 있는 나의 질문이다. 매일 손을 번쩍번쩍 들어주시는 주님께 붙들려, 매일 아침 주머니에 감춰진 물맷돌 몇 개를 만지작거리며 출근한다. 하나님을 만난 자만이 물맷돌의 기적을 믿을 수 있고 이 기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다윗은 물맷돌을 믿음의 선물로 받았으므로, 어둡고 빛이 안 보이는 위기에 더 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게 아닐까.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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