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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경의 열매] 이재훈 <16> 무당에게 성경 건네자 사시나무 떨듯 손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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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당인데 기도로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치료하겠습니까?”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아이가 3년 동안 이 병을 앓고 있었는데 주변의 용하다는 무당을 다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더 짠했다. 수중에 갖고 있는 약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 나와 팀원들은 남자의 바람대로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부디 이 아이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기도가 끝나고 자리를 뜨며 무심결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뭔가 묵직한 게 손에 잡혔다. 슬며시 손에 쥔 걸 꺼냈을 때 나와 팀원들은 까무러칠 뻔했다. 내 손엔 물에 타먹는 항생제 한 병이 쥐어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놀란 채로 멍하니 있을 겨를이 없었다. 즉각 처방을 내렸다. 일주일 이상 계속 먹일 양은 아니었기에, 고용량 요법을 쓰기로 했다. 항생제 절반을 그 자리에서 먹이고 나머지 반은 내일 아침에 다 먹으라고 했다.

본부로 돌아와 머릿속 필름을 되감아보고서야 ‘항생제 사건’의 의문이 풀렸다. 한 교민 자녀의 편도가 좀 부어서 공항 가는 길에 들러 약을 전해주고 가겠노라고 약속하고 항생제를 주머니에 넣어 뒀다가 그 집에 들르는 걸 깜빡하고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다.

한 달 후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고름이 가득했던 아이의 피부는 갓난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나아있었다. 동네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어딜 가든 “당신이 그 아이 피부병을 고친 의사냐”란 질문을 받았다. 우리 의료진이 더 이상 무당이 아니라 ‘의사’라고 불리게 된 계기였다. 동네에서 신망이 높던 무당들도 못 고친 병을 고쳤을 뿐더러 우리가 무척 강한 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감히 우리를 해하려는 시도도 더 이상 없었다.

어느 날 베루루하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무당이 우릴 찾아왔다. 그는 탈장을 겪고 있었다. 국소마취로 수술을 했는데 아픈 내색 하나 없이 의연했다. 수술을 마치고 우리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며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줬다. 그런데 그 의연하던 사람이 성경책을 받을 때 손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정기적으로 마을 전체 제사를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받는 순간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 드는군요.”

함께 갔던 현지 목사님이 무당에게 말했다.

“아내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아내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당신 마음이 어떨 것 같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창조주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이 다른 신을 따라간다면 창조주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떨던 손을 멈추고 성경을 받아들고 일어났다. 우리에게 자신의 마을에 와 달라고 정중하게 초청하고는 길을 떠났다.

그 마을을 다시 찾은 건 몇 년 후였다. “닥터 리, 무당이 지난달에 당신을 엄청 찾았습니다.” 나를 본 마을 주민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나를 찾는 걸까. 혹시 병이 재발해 나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무당이 왜 나를 찾았습니까?“

“그가 ‘닥터 리를 만나면 성경책을 좀 더 구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어요.”

걱정은 바로 허탈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사역팀에 연락해 성경책 한 박스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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