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희망부적

첨부 1


희망부적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편지 한 장 

 
- 김형태 한남대 총장 


이 글은 한남대 박수범 동문이 월요일마다 보내주는 아침편지 393회(2010. 9. 5)의 내용이다. 나 혼자만 읽기에는 너무 가슴 벅찬 사연이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실업자였던 그는 며칠 전부터 도로변 화분에 꽃을 심는 공공근로를 하고 있었다. 화분 안에 심겨진 팬지가 노랑나비처럼 봄바람에 팔랑거렸다. 보도블록 틈 사이로, 무수한 행인들의 발걸음 속에서도 살아남은 노란 민들레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 생명력에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그는 지갑 속에서 뭔가를 꺼내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자네, 그게 뭔가?” 동료인 김씨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부적이네.” “부적? 부적이 뭐 그래? 그냥 흰 종이 쪽지구먼.” 그 흰 종이쪽지는 누가 뭐래도 그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효과 만점인 희망부적이었다. 그는 종이쪽지를 접어 다시 지갑 속에 집어넣으며 생각에 젖어들었다.

석달 전의 일이었다. “나가! 이제 당신 얼굴도 보기 싫어!” 소파에 앉아 하릴없이 비디오를 보고 있던 그에게 퇴근한 아내는 쿠션을 집어던졌다. 그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텔레비전을 끈 다음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내는 날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었다. 그가 7개월 전 실직을 한 다음부터 그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는 급속도로 달라졌다. 그는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으나 청년 실업자도 수두룩한 판국에 쉰 줄에 가까운 그를 써주겠다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학비를 벌기 위해 아내는 식당에서 하루 열두 시간이나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험한 일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아내의 짜증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퇴근만 하면 그에게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두 아이의 학비와 학원비를 줄일 수도 없는 일이었고 아직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지 못한 터였다. “첫째야, 오늘이 아버지 제삿날인데 올 수 있겠니?” 아침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그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시간 아내는 식당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접시를 닦고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 제사를 지내러 가자는 전화를 하려다가 그는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았다.

시골집 대문 앞에는 그와 10년 터울인 동생의 벤츠가 주차되어 있었다. 벤츠 옆에 주차된 그의 오래된 승용차는 칠이 벗겨지고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어 아주 초라해 보였다. “온다고 욕 많이 봤데이.”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고 애잔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는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작은 아들은 잘나가는 변호사인데 맏이가 실업자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는 묵묵히 지방을 쓰고 제사상에 제수를 진설했다. 절을 끝내고 나서는 동생과 음복을 했다. 아주 쓸쓸하고 조용한 제삿날 풍경이었다.

동생과 어색하게 앉아있는 것이 불편해 그는 자리에서 일찍 일어섰다. 다음 날 출근할 것도 아니면서 그는 붙잡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시골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참 어둠 속을 달리던 그는 한 손으로 양복 주머니 속의 담배를 찾았다. 그런데 주머니 속에서는 담배 대신 꽤 두툼한 봉투가 나왔다. 그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 속에는 꼬깃꼬깃한 지폐 뭉치와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는 실내등을 켜고 편지를 들어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째야, 우야던동 히믈 일지 말거래이. 이 에미는 니만 잘 데라꼬 조상님 전에 빌고 또 빈다. 누가 뭐라케도 니는 내한테 시상에서 질로 귀한 아들이다. 어깨를 피거래이. 소기 탄다꼬 담배 너무 피지 말고 힘들 때일수록 모믈 잘 건사하거래이. 울매 안 되지만 이 돈으로 식구들하고 맛난 것도 한번 사 머거라. 살다보마 해가 뜨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는 기다. 눈보라 치는 날도 있고 말이다. 지금은 추븐 겨울이지만 쪼매마 이쓰마. 니한테도 꼬치 피는 보미 꼭 올 끼다. 내는 우리 아들을 민는다. 이 에미가 아들한테 이 말 한마디는 꼭 하고 시프다. 사랑한데이! 우리 아들. 늘근 에미가 쓴다.”

글씨라기보다 괴발개발 그린 그림에 가까운 어머니의 편지는 소리나는 대로 쓰는 바람에 맞춤법이 엉망이었다.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본 어머니는 글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실의에 빠져 있는 맏아들을 위하여 일흔이나 된 연세에 힘들게 글자를 배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가슴이 먹먹해져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명치께에 아릿한 통증이 왔다.

잠시 생각에 젖어있던 그는 어머니의 편지를 정성스레 접었다. 그리고는 편지를 지갑에 넣어 양복 안주머니 속에 넣었다. 사랑한데이, 하는 어머니의 정겨운 음성이 그의 쓰라린 가슴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희망부적을 가슴에 품은 그는 운전대를 잡고 어깨를 쫙 펴보았다.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의 앞에서 어둠이 검은 물살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김옥숙 지음「희망라면 세 봉지」)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희망부적을 갖고 있는가? 부모님, 스승님, 목사님들이 자녀, 제자, 성도들에게 어떤 희망부적을 주고 있는가? 각박한 세상이라 인정과 사람 냄새가 그립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