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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고백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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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고백적 성찰 

- 유재성 교수(침신대 상담학과장)
 

지난 11월 23일 화요일 오후, 북한의 연평도 기습 도발이 있었던 것을 전혀 모른채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학생이 불안한 얼굴과 목소리로 “전쟁났어요”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군인 아버지를 통해 북한군의 연평도 공격 소식을 듣고 전쟁이 난 것으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 순간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이어지는 소식을 통해 마음 한 구석에서 오래 동안 잊고 살았던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놀란 도민 대부분은 추가 도발의 우려 속에 연평도를 빠져나와 졸지에 인천 등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정부가 서해 5도에 세계 최강의 장비 구축을 추진하며 재발 예방을 다짐하지만 대다수 도민들은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가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인천의 한 찜질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심과 무기력을 경험하며 밀폐된 공간이 무서워 화장실 문을 닫지 못하는가 하면 포격상항에 대한 꿈, 환청, 불면 등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아이들에게서는 부모와의 분리불안 증세가 나타나고, 그들이 그린 그림에서도 토끼가 총을 쏘는 등의 모습으로 공포심이 드러나고 있다. 가히 트라우마(trauma)성 증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라우마는 어떤 충격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평상시와 다른 강력한 신체적, 심리적 위기 반응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연평도 포격 사건은 도민들에게 죽음의 공포에 대한 직접적인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에게는, 내 학생에게서 나타난 바와 같이, 과거 6·25 사변 이후로 세대를 넘어 지속적으로 내재되었던 전쟁 트라우마를 의식의 수면 위로 생생하게 촉발시키는 사건일 수 있다. 트라우마는 한 개인만 아니라 국가적, 집단적 고통의 경험일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연평도 사태는 국가적 안보와 관련된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 이슈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실존적, 신학적 물음을 야기하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하나님은 왜 이 사건을 허락하셨는가?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왜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우리에게 일어났는가? 등등 그 물음은 끝이 없다.

그래서일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이 사건이 주는 의미에 대한 많은 해석과 성찰이 분분하다. 최근에 소개된 바 있는 데이비드 오워의 경고성 메시지는 우리에게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의 예언적 메시지의 진위 여부를 떠나,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언제라도 그 백성을 치실 수 있다는 것이 성서 역사를 통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평도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지금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내게 삶의 현실에 대한 목회신학적 성찰을 가르쳐준 하워드 스톤 교수의 말처럼,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어떤 해석도 최종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만 겸손히 그분을 향해 열린 귀를 기울이고 그 분의 선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믿음으로 순종할 뿐이다. 

연평도 사건 이후 서해에서 강도 높은 한·미 합동훈련이 시작되고, 북한은 이를 맹렬히 비난하며 공격을 서슴지 않겠다는 보도가 계속되자 내 아이들은 사태가 매우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양이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표하는 그들에게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하였다. 더군다나 ‘조지 워싱턴호’ 같은 막강한 전력을 갖춘 미국의 항공모함이 참여하는데 북한이 그런 도발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 마음에 강하게 부딪치는 충격이 있었다. 애굽의 말과 병거,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21세기에 나를 통해 재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사 31:1-3). 

연평도 사태를 통해 내게 다가온 하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애굽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다. 즉시 무릎을 꿇고 내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회개해야 했다. 나는 우리를 궁극적으로 지키고 이기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강조했어야 했다. 하나님을 향한 초점과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회복해야 했다(계 2:1-7). 북한의 ‘불벼락’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이 연평도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의 한 부분일 것이다.

이와 같은 성찰은 그리스도인 개개인만 아니라 교회와 국가적으로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떨어졌는지 찾아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과 열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어려운 때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서로를 돕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히 10:24-25). 우리는 연평도 포격을 통해 소중한 생명들을 잃었다. 많은 도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 국가적 재난 앞에서 함께 슬퍼하고 기도하며 서로를 돕고 세우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2008년 2월, 미국 테네시주 소재 ‘유니온 대학교’(Union University)에 토네이도가 지나갔다. 건물들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었다. 짧은 기간에 이런 일이 벌써 세 번째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왜 토네이도가 하필 유니온을 덮쳤는지, 왜 유독 자기들이 그런 피해를 당해야 했는지 논쟁하며 갈등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모두가 하나 되어 서로를 돕고 세우는 일에 진력하였다. 함께 손잡고 기도하며 부서진 잔해들을 치웠다. 무너진 건물들을 다시 세우며, 두려움 속에서 얼어붙었던 정서적 상처들을 풀어내는 길고도 힘든 여정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믿음의 공동체가 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현실의 고통스러운 실재를 새롭게 해석하고 노래할 수 있는 치유의 언어와 의미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국인의 의식을 넘어 무의식 깊은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는 전쟁의 공포와 집단적 트라우마는, 개인마다 그 정도와 양상에 차이가 있겠지만,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떤 이념 논쟁이나 비난, 갈등을 넘어 먼저 고통 중에 있는 우리 이웃들을 서로 돌아보고 치유하며, 국가적으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겸손히 무릎을 꿇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지금 그럴 수 있다면 . . . 

연평도 사건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와 은혜의 신호등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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