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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빚 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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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진자 

-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 
 

이 시대 사람들은 모두 채권자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줄 때는 반드시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받은 것에 대한 대가를 늘 기억하지 않거나 일부라도 갚지 않으면 가차 없이 ‘배신자’라고 불리면서 채무자 취급을 받는 것은 물론 갚을 때까지 비난과 독촉의 눈총을 받아서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제자를 도와준 선생도 제자가 자주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 사정상 인사가 뜸해지면 배은망덕한 제자가 되고 만다. 또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성실히 해낸 아내도 남편과 자식이 감사표시를 하지 않을 때에는 자기가 베푼 것들을 되새기며 서운함을 곱씹다가 한을 남긴다. 모든 관계에서 꼭 받으면 줘야 하고 주면 받을 줄 안다. 

크리스천의 삶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별로 다르지 않다. 자기가 돕고 사랑해주고 기도해준 사람은 반드시 자기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내가 교회에 이만큼 봉사했으니 교회나 목사님이 나에게 이 정도는 해야 된다고 확정해 버리기도 한다. 

어떤 장로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교회에 나만큼 봉사하고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그런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돼?”라며 목청을 돋우며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마음이 허전하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물질을 드린 대상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인데도, 여전히 채권자의 입장에서 채무자에게 말하듯 나무라면서 말하고 있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늘 받기만 하는 채무자의 삶을 살아온 것 같다.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빚만 져 왔기 때문에 갚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 많은 채권자들에게 나는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다 갚아야 할까? 어느 날 노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들을 다 적어보기로 했더니 노트 앞뒤로 다섯 장을 넘겼는데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에게 엄청난 빚을 진 자들이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채무자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베푼 작은 것 가지고 매일 빚 독촉을 하는 우리는 어느새 채권자가 되어 있다. 

성탄을 앞두고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진다. 올 한 해 채권자이신 주님께 어떻게 감사함을 표시해야 할까. 무엇을 드려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 드려야 할까? 한 가지 궁색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나에게 빚진 자가 혹 있다면 탕감해주고 주님께 보고하는 게 어떨까? 

깊어가는 겨울, 갑자기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난다. 캐럴이 쏟아지는 밤 매서운 바람을 헌 옷으로 막을 수 없어 덜덜 떨며 성냥을 팔다 쓰러진 성냥팔이 소녀, 그 소녀가 한 개비 한 개비 켜대는 성냥 불빛 속 따스함의 세계에서처럼 아무 이유 없이 돌려받지 않는 사랑을 나누고 싶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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