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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처 받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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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지 않기 

-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
 

내가 출석하는 경기도 양평 상심리교회에서 초등학생 대상 영어교실을 운영한 이후 처음으로 졸업생을 배출하게 됐다. 중학생처럼 훌쩍 커버린 일곱 명의 남학생들이 오는 크리스마스이브 행사에서 영어로 캐럴을 부르기로 했다.

영어 가사는 다 외웠지만 율동을 곁들이려다 보니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동안 손 따로 발 따로 노래 따로,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석이가 교실 구석으로 가더니 고개를 푹 파묻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달래 보아도 도리질을 하며 연습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석이는 5년 반 전만 해도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이어서 툭하면 이 아이 저 아이와 싸웠던 아이였다. 주의집중을 못했을 뿐 아니라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러나 꾸준한 돌봄 끝에 어느덧 온 교인이 인정할 정도로 유순하고 성실하며 책임감 있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과거의 행동으로 돌아갔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 선생님에게 들으니 춤 연습을 할 때 여섯 명의 친구들이 “너 때문에 틀렸잖아”라며 율동이 안 맞는 책임을 석이에게 돌렸다고 한다.

나는 예배가 끝난 후 석이를 따로 불렀다. “석아. 선생님은 보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너 때문에 틀렸다고 모두 손가락질했다면서. 맞아?” 석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석아. 선생님이 본 순간에는 일곱 명 모두 틀리기는 마찬가지였어. 너만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게 오해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 너, 아까 상처 받았지?” 했다. 석이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주 단호한 어조로 “누구나 상처를 받을 수 있어.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두 가지 선택의 길을 주셨어”라고 했다.

첫째는 계속 상처받으며 삐치고 속상해하며 사는 것이고, 둘째는 상처를 받지 않기로 작정하는 것이라고 해 줬다. 지적을 받았을 때 “아! 나 연습 더 해야 되겠네” 하고, 친구들에게 웃으며 “나 틀렸냐?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쳐 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식이다.

“석아, 어때? 혼자 삐쳐 있으니 연습도 못하고 친구들과도 못 놀잖니. 너 스스로 너를 왕따시킨 셈이야. 너는 ‘계속 상처받으며 사는 것’과 ‘씩씩하고 용감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쪽으로 할래? 네가 결정해라.”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표정에서 어떤 의지가 엿보였다. 나는 “하루아침에 그런 용기가 생기지는 않는단다. 자꾸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하거든”이라고 덧붙였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 너처럼 잘 삐치고 혼자서 마음 아파한 일이 많았어. 어때? 지금 선생님 잘 삐치는 사람 같아?” 이 말에 석이는 큰 소리로 “아니요” 했다.

“선생님은 쉰 살이 되어서야 이걸 깨닫고 상처 안 받는 길을 선택했단다. 너는 몇 살이지?” “열세 살이요.” “그래, 넌 선생님보다 훨씬 빨리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아이를 가슴에 품어 안았다. “석아. 힘들어도 상처받지 않는 길을 선택하면 고맙겠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단다.” 아이는 내 품 안에서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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