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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옻나무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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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 밭 

-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
 

몇 년 전 원주에 사는 K 시인을 따라 옻나무 밭에 간 적이 있다. 어려서 옻 오른 사람을 동네에서 마주친 기억이 났다. 징그럽기가 그지없었다. 온몸이 벌겋게 부어 오른 데다가 부스럼이 더덕더덕한 게 여간 볼썽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약간 염려가 되었지만 수천 평 되는 평지에 옻나무만 가득 심은 밭을 들어갔다. 그런데 그 많은 옻나무 중 한 그루도 성한 나무가 없었다.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흉측스런 칼자국이 쭉 나 있었다. 어떤 옻나무는 칼금을 수없이 맞은 채로 서서 죽어 있었다.

K 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옻칠에 쓰이는 옻나무 진은 칼로 나무에 깊게 상처를 낼 때 그곳에 고인다고 한다. 칼을 맞은 옻나무가 온 힘을 다해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상처 있는 쪽으로 진액이 몰려간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그릇을 대고 흐르는 진액을 받는다.

다음 진액을 받기 위하여 상처가 있는 그 나무에다 다시 새로운 칼금 서너 개 더 그어놓으면 그 부위에 진액이 몰려 사흘 후면 많은 옻액을 수거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수없이 칼금을 맞은 옻나무는 죽게 되고 새로 심은 옻나무는 칼을 맞게 되는 줄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했다.

그날, 옻나무의 상처들을 바라보면서 오랜 시간을 옻나무 밭에서 보냈다. 그렇게 질 좋은 윤기를 낼 수 있는 옻칠이 그런 고통 과정을 견디며 얻어지는 줄 몰랐다.

옛날에 부자들은 관을 썩지 않게 하려고 관에다 비싼 옻칠을 두껍게 입혔다고 한다. 오랜 시간 썩지 않고 땅 속 습기에도 견디는 까닭은 이런 고통스런 옻나무의 삶에서 연유된 것이 아닐까.

옻나무 밭에 다녀와서 나는 한 편의 시를 썼다.

“원주, K 시인을 따라/ 옻나무 밭에 갔었다./ 심장은 놔두고/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수십 번 더 그어진 칼금/ 저건 숲이 아니다./ 고통이 득실거리는 겟세마네 동산./ 죽을까 말까 머뭇거릴 때마다/ 다시 메스를 댄다./ 심장은 두근거리게 놔두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피를 내주고 있다./ 몇 백 년 썩지 않을/ 힘을 내주고 있다./ 옻나무 밭에서/ 수천 개의 못자국을 보았다./ K시인과 함께”

내가 시를 가르치는 문예창작학과, 시창작 시간에도 옻나무의 고통에 대하여 학생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해 가을 학생들과 문학기행 가는 길에도 원주의 그 옻나무 밭을 들렀다. 작가가 되는 길, 시인이 되는 길에 꼭 필요한 실습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옻나무 밭에 다녀온 것과 가지 않은 것과는 사유의 깊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옻나무 밭에 서 있으므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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