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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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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 최문자 시인 (협성대 총장) 
 

요즘 우리 사회를 강타한 가장 두드러진 신드롬은 ‘숫자’이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숫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다. 신이 창조할 때 손가락 발가락의 숫자가 10개인 것에서 10진법, 5진법을 생각해낸 것은 우연한 창조가 아닌 것 같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에 그어져 있는 마디로 인간은 12진법도 생각해내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아라비아 숫자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충분히 모든 역할을 해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국가번호, 전화번호, 자동차번호, 여권번호, 아파트 동·호수, 은행계좌번호, 학번, 군번…. 숫자가 없으면 현대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마 대혼란을 겪을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숫자나 선사시대부터 사용되던 숫자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며 정신세계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숫자 뒤에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숫자는 직설적이며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인간의 사상 감정까지도 모두 숫자화한다. 가끔 숫자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214는 밸런타인데이를 뜻하는 것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의미가 되고, 빨간 장미 119송이는 불타는 사랑을 고백하는 의미이며, 22와 444라는 연속숫자는 ‘너와 나 두 사람은 죽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는 강렬한 의미가 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을 표현하면서 망설임과 기다림, 부끄러움의 과정을 삭제하고 숫자를 통하여 간단히 전달해버린다. 현대인의 삶의 대부분은 수량화 현상을 피할 수 없긴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삭막하고 씁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같이 살아나가려면, 낭패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숫자와 친밀해지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은행 카드 비밀번호조차 자주 잊어서 은행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아직도 수 조직이 고안해낸 부호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디지털 삶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가슴 깊이 느껴온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숫자로 표현될 수 없다. 입은 열지 않고 숫자만 꾹꾹 누르면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는 없다. 

이 시대에서는 숫자와 문자를 누가 더 빨리 눌러서 원하는 정보를 남보다 더 많이 빠르게 얻어내느냐 하는 것이 유능한 자가 되는 길이며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이런 숫자들을 누르거나 해독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런 메시지도 받지 못한다. 

연민과 고통이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아주 어눌하고 부족한 언어로 더듬거리며 고백하던 사랑은 거의 사라지려고 한다. 숫자 서너 개로 불타는 사랑을 전달하고 받는 자도 아주 만족해하는 숫자 중독의 시대 한 가운데 살고 있다. 

막대기 하나에 칼금 하나씩 그어 숫자로 사용하면서 살던 옛 조상들, 돌멩이를 옮겨놓으면서 돈 계산을 하던 우리의 할머니들, 그 시대의 숫자와 이 시대의 숫자는 기표는 같을지라도 기의는 상당히 다르다. 

오늘도 나는 많은 숫자를 대하며 숫자를 꾹꾹 누르며 많은 숫자를 해독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 아날로그 속성을 가진 것들은 숫자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 남아 있는 아날로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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