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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드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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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평화

- 전정희 부장 (국민일보 종교기획부장) 
 

3·1운동 직후 한국 교회의 첫 과제는 농촌진흥 사업이었습니다. 1926년 기독신보는 ‘부채에 허덕이는 농민들이 토지를 팔고 만주 혹은 일본으로 떠나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교인의 75%가 농촌에 살고 있었습니다. 장로회 총회 등은 농촌부 등을 두어 농사개량, 부업 장려 등을 통해 농민생활 향상을 꾀했으나 유랑 봇물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된 오오카지 시치베에를 비롯한 일본의 치산·치수 영웅 세 사람은 농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천재지변에 유랑하는 이들에게 역사(役事)를 일으켜 먹고살게 했던 것이지요. 

그 당시 한국 교계도 방향성은 제대로 잡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방법에 있어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일본 강점기라는 본질의 문제를 외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중일전쟁을 치르기 위해, 태평양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조선 농민을 수탈했습니다. 그러니 농민계몽 사업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지요. 수탈에 삶의 목표를 잃은 교인은 신비주의에 빠져 사이비 목회자가 벌이는 강신극(降神劇)에 속아 “주여!”를 외칩니다. 30년대 전후 이 같은 우울한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지요.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방향성은 제대로 잡았음에도 자꾸 헛발질을 해대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반드시 평화’가 있어야 할 곳에 싸움이 있다면 무신론자나 기독교 안티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1884∼1919년. 한국 기독교는 개화와 항일 투쟁을 전개하며 수난 속에서 십자가를 멘 시기였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지 않았었지요. 오늘 우리 교회는 권력, 자본과 타협하려는 경향이 진합니다. 세상 가치를 내세웁니다. 때문에 본질을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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