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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무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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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


지난주 칼럼에서 영어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국가관이 투철하고, 일의 목적과 내용을 익히 알고 있으며, 자신감이나 배짱을 가진 사람들이 큰 인재가 된다는 내용을 다룬 뒤 숱한 전화를 받았다.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문의들이었다.

첫째 궁금증은 “그래도 발음이나 영어 단어는 어려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먼저 발음에 대한 문제부터 설명하겠다. 완벽한 영어 발음은 아기 때부터 음감수성이 있어야 가능한 능력이다. 태어날 때부터 음감이 뛰어난 아이는 다 커서 배워도 영어 발음을 완벽하게 해낸다. 따라서 외국어 발음을 잘하게 하려면 음감 훈련부터 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아기 때부터 사람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듣는 것은 좋은 음감교육이다. 주입식으로 발음을 외우게 하는 것보다는 어려서부터 음감 훈련을 하여, 커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말을 듣고 차이를 인식하여 발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국제회의를 가면 미국식으로 영어 발음만 좋다고 의사소통이 되고, 내 주장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영국식 호주식 뉴질랜드식 인도식 태국식 대만식 중국식 등 다양한 영어 발음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무역을 하든, 교육에 대한 토의를 하든, 새로운 내용을 전달하든 성공하기 때문이다. 발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에 담기는 내용의 실용성 과학성 창의성인 것이다. 

민감한 음감, 정직, 책임감, 창의성. 과학성, 자신감, 인내심, 문제해결 능력, 원만한 사회적 관계 맺기 능력 등은 영유아기에 그 기초가 거의 다 형성된다. 때문에 영어 발음이나 영어 단어를 익히게 하는 일에 중점을 둔 나머지 이러한 무형의 인성 특징을 영유아기와 초등학교 저학년에 기르지 못하면 나중에 길러내기 힘들어진다.

내 아이가 영어를 사용하며 살게 될지, 아니면 영어를 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어 발음이나 영어 단어만 중점적으로 길러주려 하다가 삶 전체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삶의 기둥이 되는 이러한 무형의 인성 특징들을 갖춘 아이라면 조기에 영어든 한글이든 무엇을 가르쳐도 상처가 생기지 않겠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된 아이들은 능력에 달리는 교육을 받거나 자기 주도성을 갖지 못하면 공부에 주눅이 들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봐 왔던 아이들 중 극히 일부만이 조기 영어교육을 이겨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영유아기에 이런 무형적 인성 특징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성 특징들은 유아기 전반에 걸쳐 아주 조금씩 자라나는데, 그것도 아이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끊임없이 해 주고 격려해 주는 어른들이 주변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요즈음 많은 한국 유아들이 생활과 동떨어진 영어를 일찍 배우느라 아예 처음부터 자신감을 잃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봐 왔다. 하나님께서 내 아이에게 어떤 인성 특징을 허락하셨는지, 지금의 내 아이 자신감 수준은 어떠한지 세심히 관찰하며 아이에게 최선의 길을 선택하자. 조기 사교육의 피해는 결국 아이 자신에게 떨어진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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