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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택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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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능력 

- 이원영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
 

우리 내외가 1968년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아이스크림 종류가 너무 많아 놀랐었다. 길거리에도, 가정에도, 슈퍼마켓에도 다양한 색과 맛의 아이스크림이 많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군침만 흘리던 시절, 어느 날 유대인 가정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식사를 하고 나서 안주인 엘렌이 각각 유치원과 초등학교 1, 3학년인 세 자녀에게 “바닐라, 초콜릿, 딸기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어느 것을 먹을지 말하렴” 했다. 아이들은 잠시 생각한 뒤 한 가지씩 선택했다.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 남편은 셋 다 달라고 했다. 엘렌은 “오늘은 손님이니까 다 주지만 다음에는 한 가지만 선택하세요” 했다. 나 역시 모두 다 먹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참고 한 가지만 선택했다. 

세 종류의 아이스크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의 어려움이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되는 것을 보면 그때 내가 겪은 것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나 보다. 하라는 대로만 공부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었고, 차려진 밥상에서 먹기만 하면 되었으며,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기만 하면 되었던 그 전까지의 내 인생에서는 선택의 고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실상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작게는 한 반에서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교회, 직업, 배우자 등 수많은 선택으로 인해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문제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이렇게 중요한 선택의 능력을 자녀에게 길러주는 데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방해를 한다는 점이다. 

식당에서 엄마들이 아이에게 “우동 먹을래, 돈가스 먹을래?” “김치볶음밥 먹을래, 된장찌개 먹을래?” “스파게티 먹을래, 피자 먹을래?” 식으로 묻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왜 엄마들은 그 많은 메뉴 중에서 유독 두 가지를 제시하고 하나를 고르도록 하는 것일까? 혹시 최선의 것을 선택해 주는 것, 혹은 그렇게 유도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선택을 제한하는 것은 아이에게 “넌 올바른 선택을 할 능력이 없다”고 상기시키는 셈이다. 게다가 막상 아이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돈가스” 식으로 답했는데 엄마가 “그냥 우동 먹으렴” 하고 말한다면? 아이는 “나는 스스로 선택할 줄 몰라, 내가 선택하는 건 틀린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만일 아이가 예산보다 비싼 것을 고를까봐 걱정이 되면 “엄마가 오늘은 돈이 이만큼 있으니 그 가격에 맞는 음식을 고르자”고 제안하는 식이다. 다만 그 범위 내에서 어떤 메뉴를 고를 것인가는 아이 자율에 맡겨야 한다. 

유아기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흥미 영역을 마련해 주고 각자 원하는 놀이를 선택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일단 선택한 뒤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선택한 음식이 싫다고 엄마 음식과 바꾸어 달라고 해서는 안 되고, 선택한 장난감이 싫다고 친구의 것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선택과 책임은 어린 시절 배워야 할 소중한 능력이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옳은 선택을 대신 해줄 책임이 아니라, 선택 능력을 키워줘야 할 책임이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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