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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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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 이철 연세의료원장
 

지구촌에 쓰나미, 화산 폭발, 지진 등 많은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월 아이티에서 규모 7의 강진이 발생하여 재산과 인명에 큰 피해를 주었다. 건물의 3분의 2가 붕괴되고, 20만명의 사망자를 포함하여 300만명 이상이 피해를 보았다. 

당시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국내 의료기관이 아이티를 돕기 위해 의료봉사단을 급파하여 많은 생명을 구하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아이티에는 지진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져 있다. ‘콜레라’ 때문이다. 

난민생활은 비위생적일 수밖에 없다. 물로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는 이런 상황에서 쉽게 번져나간다. 지난해 10월부터 아이티 전역에 콜레라가 창궐해 17만명 이상이 감염되고 4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콜레라를 일으키는 비브리오 콜레라균은 더러운 물과 음식물로 감염된다. 환자의 대변 속에 배설된 콜레라균이 온통 주변을 감염시켜 물과 음식물을 오염시킨다. 

지금 아이티의 콜레라 창궐과 같은 모습이 불과 100년 전 구한말 조선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이때 우리 민족을 콜레라로부터 구한 분들이 바로 당시 제중원장이었던 에비슨 박사를 비롯한 여러 의료선교사였다. 

1895년 7월 콜레라가 대유행하여 사망자가 속출하자 당시 내무아문은 에비슨 박사를 ‘호열자(콜레라) 방역 총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이것이 한국 역사상 체계적인 방역활동의 시발점이 된다. 콜레라 환자 수용소를 만들어 환자를 격리하는 원칙 아래 전력을 다해 수천명의 환자를 제중원(세브란스병원) 또는 각 가정에서 치료했다. 생리식염수를 투입하여 탈수를 치료하고 치료시설의 온도를 높여 환자 체온을 유지시켜 신진대사를 도왔다. 

당시로서는 탈수치료와 체온유지라는 획기적인 치료 개념의 도입이었다. 동시에 호열자(콜레라)의 예방법을 일반 백성에게 교육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방수칙 전단을 거리 곳곳에 붙였는데, 그 내용은 ‘콜레라는 귀신이 아니라 병균이라는 작은 벌레가 입으로 들어와 생기며, 이 벌레는 물을 끓이면 죽고 손 씻기를 잘하면 전염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에비슨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이유를 “그들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이니, 첫째로 그들에게 이 사랑이 있기에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이곳까지 왔으며, 만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하나님의 자녀들을 도와주는 일을 위해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하였다. 

당시의 신도들도 선교사들을 찾아 병실에서 환자를 간호하겠다고 자원하였고,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조선인이 이들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헌신과 기도로 거의 생존하기 힘들었던 콜레라 환자들이 10명 중 6명이 살아나게 되었다. 그래도 당시 한성 인구 22만명 중에서 5000명이 사망하였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선교사와 초기 기독교인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내가 섬기고 있는 기관이 이렇듯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우리의 선조들이 보여준 그 사랑의 능력을 우리의 일터에서 그리고 아이티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새롭게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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