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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건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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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없는 사랑 

- 최문자 시인 (협성대 총장) 
 

어느 날 서재를 정리하다가 몇십년 전 이성우라는 평론가가 나의 초기 시 중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시를 중심으로 하여 평한 글을 새롭게 읽게 되었다. 

“그의 몸 된 교회들은 소리 나지 않게 첨탑에서 십자가를 끌어내렸다. 풀밭도 아닌 도심의 아스팔트 위에 천천히 쓰러뜨렸다. 대낮인데도 보는 이 없다. 구원받은 자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침묵하였다. 형틀마저 빼앗긴 그리스도가 아무데나 서서 막무가내로 피를 흘린다. 양들은 모두 神이 되었으므로 그 피로 속죄할 까닭이 없다. 무죄의 神들이 쉽사리 돌문을 열고 나온다. 神이 올라가지 않았던 높이까지 오르려고 날마다 신문에 떠오른다. 無言의 하늘이여.”(‘神들’ 전문) 

위의 산문시 한 편을 제시하면서 평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이 시인이 문제 삼는 것은 이른바 외형적 교회주의다. 교회라는 건물의 크기나 물질적인 가치에 인간들은 구애되어 신의 본질뿐 아니라, 신의 자리까지 차지하려 한다.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조차 이를 묵인하고 침묵하는 냉소적 상황에서 시인은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한다. 이 시인의 발언은 개인 차원의 발언이 아니라 영적 심층에서 출발하고 개진되는 강한 발언이다.” 

소리 나지 않게 첨탑에서 십자가를 끌어내리는 일들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언론 매체에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어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문제의 중심엔 언제나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이 있음을 느낀다. 

인간은 가끔 신의 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 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어 한다. 신과 동행하면서 신에게 물어보고 신을 느끼고 신에게 붙잡힌 바 되고 그의 부름에 응하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의 특권을 부여받고 싶어 한다. 모두의 신이 아닌 나만의 신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거나, 때로는 신이 된 기분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가능한 듯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너무 큰 분이라서 나는 하나님을 감히 시적으로 발현시키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 시를 쓸 때는 젊은 나이였다. 젊은 그 당시 나를 비롯한 크리스천들의 누락된 영적 성찰을 냉소적 시각을 가지고 쓴 것 같다. 

가끔 크고 작은 문제들로 교회가 TV나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높은 곳까지 가려는 인간이,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이 신과 크리스천 사이에 끼여 있음을 발견하고 우울한 하루를 보낼 때가 있다. 

한밤중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면 첨탑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십자가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그 때마다 인간 때문에 자리를 버리고 오히려 땅으로 내려가 피 흘리는 그리스도의 막무가내 사랑을 상상해 본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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