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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떠밀려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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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밀려 사는 삶 

- 최문자 시인 (협성대학교 총장)


내가 싫어하는 말 중에 ‘밀어붙인다’라는 말이 있다. 밀어붙인다는 것은 의지와 절차와 과정을 삭제한 행위이다. 이 시대에는 이 밀어붙인다는 행위가 어쩌면 그 행위자를 능력 있는 것으로 평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힘에 의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엉거주춤 떠밀려 가는 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나도 이 밀어붙이는 일 때문에 한동안 보랏빛 공포에 시달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모든 물체가 프리즘을 통해 보는 것처럼 물체의 테두리가 모두 일곱 가지 색깔로 둘러싸여 보였다. 하늘을 봐도, 나무를 봐도, 사람을 봐도 가장자리가 보, 남, 파, 초, 노, 주, 빨, 그중에서도 보라색이 진하게 물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며칠을 보랏빛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안과를 찾았다. 여러 가지 안과 질환에 대한 검사를 받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다른 병원에도 가보고 한약도 먹어보고 특별한 민간요법도 써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친척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우연히 만난 기회에 그 고통을 털어놓았더니 요즘 생활 중 크게 공포를 느낀 사례가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혹시 생각이 나면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이틀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언뜻 한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 전부터 나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운동신경도 둔한데다가 겁도 많은 터라 수영 선생에게 핀잔을 여러 번 들었다. 어느 날 2m가 넘는 깊이의 풀 속으로 다이빙하여 헤엄쳐 나가는 훈련을 할 때였다. 나는 무섭고 자신이 없어서 내 차례가 되면 자꾸 뒤로 도망쳐 줄 맨 뒤에 가서 서 있곤 했다. 

“밀어붙여!” 누군가가 코치에게 소리치자 코치는 준비자세도 취하지 못한 나의 엉덩이를 물속으로 힘껏 밀어붙였다. 수없이 물을 들이키며 간신히 물속에서 빠져나온 나는 그날로 수영을 그만두었다. 근래에 겪은 일 중에 공포를 느꼈던 일이 그 일 뿐이었으므로 나는 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상담 중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의사는 “바로 그것이었군요” 하면서 중지했던 수영 강습을 다시 시작할 것을 권했다. 

의사의 지시대로 단체가 아닌 개인레슨을 받았다. 아주 얕은 곳에서부터 무리 없는 절차로 천천히 친절한 강습을 받았다. 2주쯤 지나서 언제 나은지도 모르게 무지개 색으로 둘러싸여 보이던 모든 물체가 정상적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 후 1년을 넘게 더 훈련을 하여 지금은 수영의 모든 종목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떠밀린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일인지 작은 수영 강습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삶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은 나에게 주신 것이므로 내가 멋지게 사용해야 한다. 어느 누구의 강한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떠밀리며 살 일이 아니다. 이 시대의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 사랑’이란 명분을 가지고 자녀를 힘껏 떠밀고 있다. 또 직장에서 사회에서 목적이 아닌 목표를 향해 떠밀고, 떠밀리고 있다. 

떠밀리는 자들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비록 작은 공포를 겪었지만 떠밀리는 자들의 고통은 각양각색으로 공포의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밀어붙이며 깊은 삶의 물속으로 빠뜨릴 권리는 없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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