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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뱅 신학으로 본 ‘반정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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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 신학으로 본 ‘반정부 시위’ 

- 안인섭 교수 (총신대 역사신학)


칼뱅이 살았던 16세기 초 유럽의 국가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서로 묶여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이 왕에게 모든 권력을 주셨다는 신념을 가지고 심지어 국민의 신앙도 국가가 강제로 결정했다. 백성들은 단지 이런 국가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경에 기초한 신앙을 재발견한 종교개혁주의자들은 국가가 성경에서 벗어난 신앙을 강요할 때 그 압제 밑에서 순교하거나 아니면 정든 고향을 버리고 국외로 떠났다. 칼뱅 자신도 그런 난민 가운데 하나다. 

그러면 칼뱅은 국가의 권위 자체를 거부했을까. 그것은 아니다. 칼뱅은 국가와 교회의 강력한 결합을 주장했던 로마 가톨릭을 반대했다. 칼뱅은 동시에 국가를 거부하던 급진 종교개혁도 비판했다. 칼뱅의 주장은 국가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고유한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유지하는 것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국가를 세우셨다. 

그렇다면 국가가 위임 받은 본래적 임무에서 이탈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국가가 평화를 깨뜨리고 국민의 존엄성을 해치는 경우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칼뱅은 그런 국가는 더 이상 하나님에 의해서 인정되는 정부가 아니라는 뉘앙스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칼뱅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순종’을 강조한다. 불의한 정부에 대한 순종의 여부는 신앙의 문제가 된다. 물론 칼뱅은 국가에 대한 저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불의한 정부에 대한 불복종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칼뱅의 후예들에게 넘겨졌다. 칼뱅의 신학을 수용했던 네덜란드나 스코틀랜드를 보라. 그들은 칼뱅의 신학을 더 강조해서 국민적인 저항을 했다. 네덜란드는 결국 신성로마제국에서 독립을 쟁취했다. 일제 당시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3·1운동에 참여하고, 당시로서는 국가 시책이었던 ‘신사참배’를 소수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반대하면서 국가에 저항했던 사례도 같은 경우다. 

하나님이 수립한 기관인 국가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자세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임하신 그 본래의 역할을 상실한 그 어떤 정부나 위정자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합당할 수 없다. 따라서 국민들의 저항은 마땅한 것이다. 최근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운동 혹은 반정부 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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