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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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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온다 

- 은미희 (소설가)
 

연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이 더욱 뒤숭숭하게 만든다. 칼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하다. 물가는 뛰고 중동발 불온한 소식은 내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벌써 3월인데, 꽁꽁 얼었던 땅들이 춘니로 녹아드는데, 어디서도 봄은 느낄 수 없었다. 

봄이 보고 싶었다. 파르르, 차가운 바람결에 몸을 떨면서도 졸가리들에 움으로 맺혀 있는 봄의 기운을 보고 싶었다. 나는 봄을 찾아 나섰다. 더디 오는 봄을 마중이라도 나가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마침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휴대전화의 액정화면에 뜬 이름은 ‘삼미정’ 언니였다. 

어느날 사라진 단골 식당 삼미정 언니

삼미정. 언니는 한때 내가 자주 가던 식당의 주인이었고, 그 언니는 혼자 사는 내가 행여 대충 끼니를 넘길까봐 나를 불러 메뉴에도 없는 요리를 만들어 나에게 먹이곤 하였다. 나는 반갑게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여차하면 나는 언니와 함께 봄맞이를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언니의 말은 의외였다. 잠깐 연락이 되지 않아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언니는 어느 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누구도 언니의 소식을 몰랐다. 무슨 일이 있을까. 내 걱정은 하루하루 증식돼 갔다. 언니의 삶이라는 것은 팍팍하기 그지없었다. 남편이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지게 된 빚을 수십년 동안 음식점을 하면서 다 갚아나갔고, 그 와중에 두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언니였다. 빚을 다 갚던 날, 언니는 조촐하게 상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었다. 그리고 둘이 오붓하게 빚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했다. 

두 아들 역시 억척스럽게 살아온 언니에게 보답하듯 스스로 알아서 앞 닦음을 했고, 이제 언니의 삶은 걱정이 없어 보였다. 환갑이 넘어 맞은 그 평화가 참으로 소중해 보였다. 그런 언니가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행여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일이 있었나 싶어 한편으로는 언니가 야속하기도 했고, 또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한데 삼년 전, 뜻하지 않게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것처럼 언니는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났다. 사연인즉, 식당주인이 임대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했던 모양인데 언니 수중에는 그만한 돈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디 가서 돈을 융통할 데도 없었고, 빚이라면 지긋지긋해 그냥 굶어죽지만 않는다면 없는 대로 살겠다고 식당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어떤 시설에 들어가 주방일을 맡아하며 살아왔노라고 했다. 

뒤늦게나마 그렇게 연락해준 언니가 고마웠다. 언니는 신산한 세월을 살았던 사람답게 지혜가 깊었다. 그런 언니에게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데 그런 언니가 잠시 소식을 끊겠다니.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 있냐고, 캐묻는 나에게 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사업을 하는 아들이 잘못됐어. 동업을 하던 사람이 아들 모르게 자금을 가지고 잠적해버렸다.” 

언니의 아들이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데 액수가 너무 커 감당할 수가 없는 지경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가족까지 끌어들인 통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난 모양이었다. 만삭의 아내는 친정까지 못살게 되었다며 울며 지낸다고 했다. 나는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한데 언니는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어려운 세월을 정면 돌파해 온 언니의 내공인지, 아니면 체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냐고 되뇌는 나에게 언니는 말을 했다. 

팍팍한 삶… 봄볕은 언제 들까

“기도해야지.” 

나 역시 그 언니를 위해 해줄 것은 당장에 기도밖에 없었다. 울고불고,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치레 같은 말들 역시 당장에 언니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언니는 기도원에 가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일이 잘 마무리될 때까지 지내겠다고 했다. 언니는 이번에도 잘 돌파할 것이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봄맞이. 이 투정이 언니의 삶 앞에서 참으로 부끄럽게 만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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