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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간의 계획, 하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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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계획, 하늘의 뜻 

-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제 자식 귀한 줄은 어느 부모나 다 아는 법이다. 내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고 아이가 아프면 차라리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게 부모다. 동물도 제 새끼는 챙기는 법이니 그건 자연법칙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신학자라서 그런지 굳이 거기서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인간이 타락 이전에는 필시 생명 있는 만물을 향하여 ‘돌보고 기르고 살려내려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본성이 왜곡된 이래 마음은 졸아들고 편협해져서 ‘무엇이든 제 자식’으로 국한되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여 막순이를 무작정 비난하기 힘들었다. 막순이는 드라마 ‘짝패’의 도망 노비다. 거지들의 움막에서 몸을 풀자마자 동네 유지의 젖어미로 끌려간 가여운 여인이다. 갓난쟁이 도령의 어머니는 산고로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끌려와 남의 자식 배불리며 막순이는 거지 움막에서 배고파 울고 있을 제 자식 생각에 피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몹쓸 생각을 한 거였다. 두 아기를 바꿀 생각 말이다. 

내 자식 내 손으로 키우고 싶고, 배불리고 싶던 어미 마음은 그렇게 제 아이는 양반집 도련님 ‘귀동이’로, 양반집 도령은 비렁뱅이 ‘천둥이’로 자라게 만들어 버렸다. 자랄수록 대감마님을 쏙 닮아가는 ‘천둥이’가 비럭질을 하러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일도 근심이요, 공부에는 도통 뜻이 없고 밖으로 돌며 장난질만 일삼는 아들 녀석 ‘귀동이’ 감싸는 일도 한 걱정이나, 무엇보다 가장 큰 가슴앓이는 ‘천둥이’가 자신을 어미로 알고 주변을 서성이는 것이리라. 두려움과 미안함에 버럭 “난 네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매몰차게 몰아내었지만, 그 마음이 어찌 편했을까. 내 자식 좋자고 실은 그 아이의 삶이었을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을 빼앗았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어쩌랴. 살면서 제발 안 보았으면 했던 천둥이, 더구나 아들 귀동이와는 엮이지 않았으면 했던 어미 맘과 다르게 두 아이는 짝패가 되었다. 어른들의 의도나 염려와 상관없이 생명을 예쁘게 꽃피우며 올곧게, 슬기롭게, 정의롭게 자란 두 아이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았다. 이 둘은 필시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단짝으로 서로 지지하고 서로 도우며 성장할 것 같다. 제목이 ‘짝패’이니 말이다. 

문득 예수의 산상수훈 말씀이 떠오른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6∼27)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 나의 걱정과 계획으로 무엇을 그리 대단하게 바꿀 수 있겠는가. 더구나 다른 생명의 희생을 대가로 치르는 인간의 계획이라면 반성할 일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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