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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꼴찌를 챙기는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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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를 챙기는 하나님 나라 

-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한창 사춘기 시절조차 가요는 들어본 바가 없었다. 길을 걷다 흘러나오는 노래야 어쩔 수 없다지만 특별히 챙겨 들은 기억이 없다. ‘오빠’를 외치며 열성으로 특정 가수를 쫓아다니는 또래 여학생들을 이해 못하던 메마른 청춘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야말로 숨도 안 쉬고 일곱 가수의 노래를 몰입해서 들었다. 봄기운에 늘어지는 것이 싫어 모처럼 운동을 하며 TV에서 하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본 것이다. ‘멋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 정말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구나! 장르를 떠나 모두가 자신의 노래를 신명으로 불러내는 그들을 보며, ‘나는 왜 한번도 가요를 좋아하지 못했지’라고 반성도 해보았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의 ‘규칙’을 알게 되면서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서바이벌 노래 대결이란다. 일곱 명의 가수가 500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를 하고 평가를 받은 뒤 꼴찌는 탈락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그 빈자리에 새로운 가수가 들어오고, 그렇게 무한경쟁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출연가수들의 운명이었다. 

청중과 시청자들이야 좋을 일이다. 한 회 한 회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대한민국 최고 가수들의 ‘라이브’를 매번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가수들이야 한 곡을 불렀는데 마치 스무 곡쯤 부른 사람들처럼 탈진을 하든, 여기서 탈락하면 은퇴하고 싶을 것 같은 마음이 들든, 보는 대중이야 즐겁다. 정말 다른 색깔, 다른 감동을 주는 일곱 가수를 어떻게 줄 세우라는 것인지…. 

그래도 그게 규칙이다. 가수들도 그 규칙을 인정했으니 참가했을 것이고, 청중과 시청자는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까 예측하고 응원하는 가운데 이 규칙을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바로 그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요즘 들어 많이 등장한 서바이벌 게임이나 프로그램들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당연시하라’는 무언의 명령과 내면화를 부추기는 그 규칙이 싫어서 말이다. 자격 미달이나 불성실해서가 아닌, 그게 규칙이어서 꼴찌는 퇴출이요 탈락인 것이다. 이런 규칙이 주는 짜릿함과 긴장을 즐기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이런 규칙을 당연시 여기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귀한 동료를 그 규칙에 따라 퇴출시키는 일에 동조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경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보자. 포도원 일을 위해 주인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다섯 차례나 시장에 나가 인부를 불러왔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임금을 치를 시간이 되자 이 주인이 모든 일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거다. 아침부터 뽑혀 와서 일했던 일류 일꾼들이 불만을 품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중 사람에게도 당신과 똑같이 주고 싶소”(마 20:14).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이다. 스펙 좋고 체격 좋고 전문성 있어 일찌감치 일감을 찾은 최고의 일꾼들만이 아니라, 약하고 모자라고 조금은 부족해서 뒤처진 꼴찌에게도 넉넉하고 싶은 마음.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이럴진대 꼴찌의 퇴출, 하나님 나라에서 이는 당연한 게 아니라, 불의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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