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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련속에 담긴 선물에 대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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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속에 담긴 선물에 대한 감사 

- 강준민 목사(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

 
시련이란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다. 견디기가 어렵기에 시련이요, 고통스럽기에 시련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련에 감사해야 한다. 시련에 대해 감사하려면 시련에 대해 공부해야한다. 시련이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는 가를 알아야 한다. 시련이 한번 지나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가를 잘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시련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시련이란 검은 보자기에 싸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물론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물이다. 그렇지만 그 진가를 알면 쉽게 거부할 수 없다. 

시련은 우리를 시험한다. 시련은 우리를 연단한다. 시련은 마치 뜨거운 용광로와 같다. 뜨거운 시련 중에 우리는 연단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깨어지고, 부서지고, 녹아진다. 그 과정에서 정화된다. 그 과정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정금이 되어 나온다. 시련은 우리를 흔든다. 시련이 우리를 흔들 때, 우리는 흔들리면서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린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무는 흔들리면서 뿌리를 내린다. 

나무는 좋은 환경에서는 뿌리를 깊이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물이 풍부하고 바람이 거세지 않는 곳에서는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릴 때는 시련의 때다. 가무는 때와 산불이 났을 때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린다. 거센 폭풍우에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깊이 내린다. 거센 폭풍우에도 견고한 나무는 이미 많이 흔들려본 나무다. 흔들리면서 뿌리를 내린 나무는 강하다. 거센 바람에도 견딘 나무는 유연한 나무다. 자기를 낮출 줄 아는 나무다. 나무가 버티기만 하면 부러진다. 때로는 뿌리 채 뽑힐 수도 있다. 

폭풍우에 뿌리가 뽑힌 나무가 강에 떠내려가다가 버들나무를 만났다. 뿌리가 뽑힌 나무가 버들나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이런 폭풍우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았니?” 버들나무가 대답했다. “나는 폭풍우가 불면 머리를 숙이기 때문이야.” 시련에도 살아남은 나무는 뭔가가 다르다. 시련 중에 살아남은 나무는 뿌리 깊은 나무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나무다. 바람에 잘 적응할 줄 아는 유연한 가지를 가진 나무다. 

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강하게 한다. 시련을 통과하고 나면 사람은 강해진다. 강함은 강함 자체라기보다 유연함에 있다. 적응력에 있다. 부드러움에 있다. 뿌리는 깊지만 유연한 나무는 시련에 익숙한 나무다. 그와 같이 시련을 잘 통과한 사람은 유연한 나무와 같다. 유연함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다. 

시련은 우리에게 가치를 더해준다. 황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바로 시련의 과정이다. 추운 겨울에 얼고 녹으면서 명태는 황태가 된다. 명태를 황태로 만드는 것은 추운 겨울날씨다. 겨울이 따뜻하면 황태의 수확률이 적다. 올해는 유난히 추었다. 그래서 어느 해보다 황태 수확률이 많을 것이라고 한다. 명태는 비싸지 않다. 동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수개월 동안 얼고 녹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색깔, 다른 맛을 내는 황태는 그 값이 비싸다. 시련이 가치를 더해준 까닭이다. 

시련은 사람의 가치를 더해준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시련으로 단련시킨다.”는 말이 나왔다. 성경을 보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시련을 통과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시련을 통해 단련시키셨다. 시련을 통과하면서 그들은 가치를 더해 갔다. 시련을 통해 그들은 거룩해졌다. 시련을 통해 더욱 지혜로워졌다. 더욱 겸손해졌고, 더욱 유연해졌다. 더욱 온유해졌다. 더욱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련을 통해 그들은 정금같은 사람이 되었다. 

위대함은 시련을 통해 주어진다. 하나님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사람은 시련을 잘 견뎌낸 사람이다. 시련에 잘 견뎌내기 위해서는 시련을 잘 수용해야 한다. 긍정적인 자세로 시련을 맞이해야 한다. 시련의 때에 원망하지 말라. 시련을 통해 성숙하라. 원숙에 이르도록 하라. 시련을 통해 더욱 깊어지도록 하라. 얕은 총명, 얕은꾀는 잘못된 분별을 하거나 그릇된 진단을 하게 만든다. 

지혜는 신중함에 있다. 신중함은 깊이에 있다. 깊이 있는 분별력이란 전체를 보고, 근원을 살피는 분별력이다. 그런 분별력은 시련을 통과하는 자에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다. 부디 시련 때문에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라. 나는 시련에 감사하면서도 시련의 때에 아파했던 날들의 고통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시련은 내 영혼을 정화시켰다. 시련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게 만들었다. 시련 속에는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선물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시련에 대해 감사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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