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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경 속 비밀] 바벨론의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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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비밀] 바벨론의 베드로 

- 작가 김성일
 

AD 440년, 처음으로 교황의 명칭을 사용한 레오 1세는 이전의 로마 교회 책임자를 모두 교황으로 하고 제1대 교황에 베드로를 추존했다. 또 AD 445년에 모든 교회는 사도 베드로의 우월권을 가진 로마 교황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베드로 즉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한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이후로 로마 교회는 베드로와 로마를 더 긴밀하게 연결시키기 위해 그의 모든 행적을 로마 쪽으로 끌어다 붙여 놓았다.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가 마치 로마에서 기록된 것처럼 해석한 것도 그 사례이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즉 베드로가 박해당하는 로마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로마를 바벨론으로 썼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 대한 본격적인 박해는 로마 화재가 일어난 AD 64년 이후에 시작되었고 편지가 기록되었다는 AD 63년은 바울이 연금된 거처에서 면회자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평온했다. 베드로가 그의 첫 번째 편지를 쓴 장소는 로마가 아니라 실제로 바벨론이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1∼2). 

이들 지역은 모두 바벨론의 동북방에 있다. AD 43년 야고보의 순교 후 예루살렘을 떠난 베드로는 이들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했고 AD 49년 예루살렘 총회가 끝난 후 다시 파르티아와 페르시아 지역의 선교를 위해 바벨론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이 편지를 대필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실루아노를 실라와 동일시해서 말하기도 한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벧전 5:12). 

실라는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에 동행했던 사람이고(행 15:40) 그 이름은 실루아노의 약칭이다. 그러나 실루아노 역시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다. 베드로는 편지에 적혀진 대로 바벨론에서 그의 첫 번째 편지를 썼고, ‘말미암아’라는 애매한 전치사 ‘디아(δι?)’로 보아 실루아노는 편지를 대필한 자가 아니라 전달한 자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편지를 대필한 사람은 오히려 ‘내 아들’로 표현된 마가였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의 집필 시기는 AD 63년이 아니라 AD 50년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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