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사

첨부 1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사 

- 강준민 목사(LA 새생명비전교회 담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십자가에서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사랑은 희생이다. 사랑의 깊이와 넓이는 희생에 의해 결정된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없다. 상처를 받기까지 사랑해 본 경험이 없다면 사랑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아픔이요, 가슴앓이요. 거룩한 두근거림이다. 사랑은 자기를 내어 줌이다. 사랑은 주면서 더욱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사랑은 억울해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픔이지만 동시에 즐거움이다. 아파하며 즐거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 감동을 주는 것은 희생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면 전율한다. 전존재로 그 사랑을 느낀다. 세포마다 사랑을 느낀다. 사랑은 우리 영혼에 흔적을 남긴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약해진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는 약해진다. 사랑하면 지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에서 약해지셨다. 그렇지만 사랑은 역설적으로 강하다. 그 이유는 사랑을 위해 스스로 약함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질 수 있기에 사랑은 강하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사랑은 강하다. 사랑 때문에 견디고, 사랑 때문에 인내하고, 사랑 때문에 오래 참을 수 있기에 사랑은 강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주소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게 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깨달음 중에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람은 사랑 때문에 변화된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요, 소생케 하는 힘이다. 사랑은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용서하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용서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다. 예수님의 씻으심은 용서의 씻으심이었다. 그들이 장차 십자가에서 모두 자신을 떠날 것을 아셨다. 가룟 유다는 자신을 팔고, 베드로는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아셨다. 그들이 장차 지을 죄를 알고 미리 용서하셨다. 그것도 무릎을 꿇고 용서하셨다.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 무릎을 꿇으셨다. 무릎을 꿇고 그분의 용서하심을 받아달라고 하신 것이다. 용서는 예수님의 섬김의 극치다. 

용서는 쉬운 것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유혹은 복수에 대한 유혹이다. 그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용서다. 복수해야 할 대상의 죄를 도말하고, 그를 자유케 해주는 것이 용서다. 용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비지심이 아니라 측은지심을 품는 것이다. 용서는 지워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발명품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에 하나가 있다면 지우개다. 지우개는 잘못을 지우는 도구다. 지우개는 과거의 잘못을 지워주는 십자가를 닮았다. 과거의 죄 문서를 십자가에서 도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다. 지우개는 새롭게 시작하도록 도와준다. 잘못 쓴 것을 지우고 다시 쓰고, 더 잘 쓰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우개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랑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가치를 더해주는 사랑이다. 가치를 더해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반면에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좋지 않다. 죄는 가치가 떨어뜨린다. 죄를 짓게 되면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무한한 잠재력을 상실하게 된다. 좋은 위치를 상실하게 된다.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죄는 아름다운 사람도 추하게 만든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이다. 죄를 미워해야 하는 것이다.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인으로 만드신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의 죄는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가시켜 주신 것이다. 사랑을 받되 누구의 사랑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사랑해 주는 대상에 따라 사랑받는 대상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룻이 보아스의 사랑을 받는 순간, 그녀의 가치가 달라졌다. 위치가 달라졌다. 신분이 달라졌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순간 우리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고, 의인이 되었다.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대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면서 사랑하신다. 우리 함께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하자. 그 사랑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자.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