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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랑의 계절에 변치 않는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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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절에 변치 않는 사랑을 말하다 

- 백소영 교수 (이화여대)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목련, 라일락 사이로 두 손 꼭 잡은 연인이 종종 눈에 뜨인다. 금남의 집이었던 이화동산에도 용감하게 진입한 청춘남녀들이 캠퍼스를 낭만스럽게 물들이고 있다. 한창 깨가 쏟아지는 연인들은 지금의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으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영원하다니까. 행여 이리 연애를 즐기다 내 마음이 변했다면 그건 운명의 짝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뿐, 천생연분을 만나고 나면 내 사랑은 영원할 거라, 그리 믿을 것이다. 

최근 드라마 ‘남자를 믿었네’를 보면,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하느라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일삼는 한 여인이 나온다. 연인 현수와 밀고 당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급기야 조건 좋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정민이란 여자다. 유부녀가 된 뒤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현수의 주위를 맴돌며 그의 시선과 관심을 요구한다. 일이든 사람이든 현수가 자기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 듯 보이면 보채고 신경질 내고 협박하며 현수의 전부를 소유하려 한다. 한순간도 현수와 떨어지기 싫어 꼭 붙어 다니며 그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최근에는 현수의 맘이 변한 듯하여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나한테 현수씨가 전부인 거 알지? 난 현수씨 없으면 못 살아”라고 못을 박아도 영 불안하다. 마치 정민에게 현수 이외의 다른 삶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방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절실히 바란다. 왜 그런 걸까? 아무리 애인이라 해도 어찌 그이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을까? 실존주의적 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모두 ‘영원을 잡아보려는 처절한 몸짓’일 뿐이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순간부터 인간은 다시 연합하고자, 다시 연대감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아기가 엄마 품을 찾는 절실함이나 연인이 상대방을 찾는 애절함은 모두 ‘온전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연합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동 욕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제약받고, 그 제약에 의해 감정도 변하는 것이 인간이다. 엄마도 아가와 합체하여 살 수 없고, 아무리 절절한 연인도 스물네 시간을 붙어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사랑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온전하고 완전하고 영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신앙적 연합을 기반으로 해서만이 인간의 사랑은 온전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사실 인간에게서 ‘영원’을 찾아내려는 것 자체가 불신앙의 표현이다. 오직 ‘영원’이신 하나님에게 잇대어 사는 사람만이 그 영원의 힘에 힘입어 이 땅에서의 모든 인간적 사랑에 성실할 수 있는 것이다. 정민이가, 그리고 땅의 사랑에 목매는 많은 연인이 꼭 경험했으면 하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과의 사랑이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그 사랑이 인간의 사랑에 자유를 줄 것이므로….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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