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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기의 한국교회 대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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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교회 대안을 생각한다

- Sergei (러시아선교사)


한국교회는 120년 혼란의 시대를 지나면서 성장해 왔다. 축복을 외치며 성공을 기도하던 시절을 지나고, 교회의 대형화가 목회자의 성공으로 여겨지는 시대도 이제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것이 개인의 성공일지는 몰라도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세속주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극단적인 대립을 보게 된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교회에 대한 은근한 억압이 오늘의 무조건적인 비난세력을 낳은 것을 보게 된다. 기독교 자체 내에서도 비난과 자책과 들춰냄, 이러한 것은 이제 그만하여야 한다. 비난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안을 찾고 제시하는 일이다.

이러한 비난과 좌절에 대하여 고후 2:1-2절에는 우리를 기만한 자를 기쁘게 할 것 밖에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지나온 역사를 발판 삼아 내일을 계획하는 것이 훨씬 유익한 일일 텐데…….

1. 구(舊)시대를 청산하자. 구시대란 타락한 지도자를 말한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교회 돈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출세나 개인금고처럼, 그리고 명예의 도구로 삼는 이들이다. 구시대란 이기적인 지도자들을 말한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교회밖에 모르고, 생각이나 활동이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다.

구시대란 보수 꼴통을 말한다. 변화하는 시대를 리드해 가는 것이 아니고 뒤에 따라오면서, 앞의 것도 못 나가게 붙잡고 있는 것을 말한다. 구시대란 강압과 권위주의적 태도와 융통성 없는 교리주의를 말한다. 바른 것에 대한 추구와 바로잡는 일, 바로 가르치고 바로 알아 진리를 실천하는 일에 제동을 거는 보수 꼴통을 말한다. 구시대란 말로 다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구시대 지도자라 칭하는 자들은 스스로 물러가야 한다. 쫓아내기 전에, 퇴출되기 전에 스스로 자기를 이양하여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살 길이다. 신실하고 헌신되고 정직한 젊은 지도자들을 찾아서, 정직하게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때를 놓치면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적절한 때에 자리를 이양해 줌으로 신세계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러한 성숙함이 한국교회에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소망이요 한국교회의 대안이다.

은퇴나 이양을 하였으면 멀리 떠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주변에서 맴돌면 안 된다. 연륜이나 경험이나 기득권을 가지고 뒤에서 조종하면 안 된다. 그것이 병이다. 한국교회를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기웃거리지 말라.

조용기 목사가 새벽기도시간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허물이 덮어질 수 있는 권위 있는 행동이었다. 이제 진정한 회개였다면 그 이후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모든 공직에서 깨끗하게 물러나 후임에게 이양하고 떠나야 한다. 여기까지가 그의 마지막 역사적 임무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것이 실행된다면 과연 한국교회의 위대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2. 한국 미래목회포럼이 오늘 한국교회의 화두는 “목사다운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교회다운 교회는 전적으로 목사의 리더십과 그 책임이고, 목사다운 목사는 신학교 교육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신학 교육에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사실 신학교는 대형이 필요하지 않다. 돈벌이로 생각하기 때문에 대형화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다. 기드온의 300용사를 훈련하듯이 길러내고 훈련하여야 한다. 상업주의 학교는 정직한 신앙양심으로 폐쇄하든지 개혁되어야 한다. 온갖 잡동사니 신학교도 모두 정리하여야 한다. 역사 속에 성직자가 많아지면 그 사회는 반드시 타락한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지금까지 결과를 가지고 논란을 벌여왔다.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항상 사고처리반이다. 일이 터지고 나면 해결하려고 온갖 사회비용을 지불하고 수습한다. 이것은 매우 후진국형 사회의 모습이다.

선진사회란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예방에 대한 생각을 할 때가 되었다. 그 정도 정치적인 여유나 사회 문화적인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예방에 대한 생각을 못하고 항상 뒷북 치는 행정이나 정치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감당할 신학교에서 인격교육과 영성훈련과 신학훈련과 리더십 훈련이 바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필자는 신학교를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과정으로 지나왔을 뿐이 아니었던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교회생활의 필요에 의하여 수많은 세미나를 좇아다니면서 스스로 배우고 연마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면, 신학교육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는가를 보게 된다.

신학교 운영자들은 매우 철저하게 교육한다고 한다. 아주 현대식 프로그램과 교수진으로 학생들을 훈련한다고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인격의 문제, 돈·여자·권력·명예 문제 모두 신학교에서 인식하고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사고처리반이 아니다. 이제는 사고예방기관이 되어야 한다.

3. 교단적으로 노회적으로 교회 정풍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검소한 삶을 훈련하고 실천하는 일이라든가, 가난한 이웃 돌보기 운동, 교회 재정운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청지기 훈련이 교회 윤리와 도덕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전도목표 몇백 명이 아니다. 배가 운동이 아니다. 양심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영적인 차원에서는 말씀 바로 전하기 운동, 성경연구 운동, 바른 신학세우기 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치명적 약점인 기복신앙, 무당신앙, 성공주의 신앙을 극복하여야 한다. 칼빈주의 교리인 성도의 견인 사상은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숙고하여야 한다.

지적인 차원에서는 기독교 정신, 기독교 사상에 대한 지성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 가치관 훈련과 물질주의적 세속주의에 대한 바른 교육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믿음은 있는데 정신(사상·생각)이 없는 기형적인 신앙이라면, 이제는 동시에 균형을 잡아나가는 훈련이 있어야 한다.

진보주의는 세상을 향한 대안을 찾기에 많은 발전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 지나친 융통성과 포용을 하다 보니 신학의 혼돈을 가져오고, 보수주의는 원칙과 전통을 수구하려는 생각에 꼴통이 되어 간다. 개혁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도 조금 깊이 들어가보면 꼴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다. 이 모든 것이 목사의 문제요, 리더십의 문제이려니…….

오늘의 선교도, 숫자의 노예가 된 몇몇 지도자들의 타락한 정신으로 대량으로 내보내더니, 이제야 문제가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니 대책을 찾는다고 야단이다. 사후 약방문이다. 세계에 흩어져 있으니 한국교회처럼 한꺼번에 구정물이 솟아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한국교회의 또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운동을 기대하며…….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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