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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똑똑한 자에겐 숨기신 하나님 나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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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자에겐 숨기신 하나님 나라의 비밀 

- 백소영 교수 (이화여대)
 

“좋아하는 거? 올챙이랑 붕어, 나무, 꽃, 그리고 새…. 싫어하는 건 없는데? 아, 무서워하는 건 있어요. 불, 공장, 그리고 신애 김치 가져다 준 사람….” 그러고는 그 선한 눈이 공포에 휘감기더니 이내 몸서리를 친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 등장하는 지적장애인 ‘봉영규’ 이야기다. 아이큐가 70이라는데, 당연 구구단이나 영어단어 같은 공부는 힘든 일이다. 해서 철없는 동네 아이들은 영규를 ‘바보’라고 놀린다. 그래도 화내는 법 없이 빙긋, 선한 웃음으로 지나치곤 한다. 아들 ‘마루’가 제 아비를 무시해도 오히려 노여워하는 노모를 말리며 “마루, 안 나빠”하는 사람이다. 

도대체 그가 나타나면 싸움이라는 것이 진행되기 힘들다. 한번은 오래도록 짝사랑하던 ‘미숙씨’의 전남편이라면서 웬 불한당이 나타나 난동을 피운 적이 있었다. ‘미숙씨’를 구한다고 막아서다 여기저기 얻어터지고 퉁퉁 부어서도 그의 사정을 듣더니 영규가 대뜸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럼 미숙씨랑 거기 무서운 아저씨랑, 나랑 셋이 다 함께 살아요. 뭐,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거기 무서운 아저씨는 미숙씨 남편이라 절대로 못 간대고, 나는 미숙씨가 좋아서 같이 살아야 하고….” 어이없는 제안에 아들 등짝을 때리며 한숨을 쉬는 노모를 보면서도 영규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웃을 뿐이다. 

영규가 ‘바보’라지만, 난 그게 참으로 의심스럽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바보’와 ‘보통사람’ 그리고 ‘천재’를 나누는 걸까? 미숙이 청각장애가 있는 걸 아는 영규는 너끈히 수화를 배웠다. 수화, 그게 꽤나 어려운 손짓인데 영규는 오직 한 목적으로 그걸 공부했다. 미숙씨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더구나 영규의 손을 거쳐 간 꽃들은 시드는 법이 없었다. 복잡하고 가짓수도 많은 꽃 이름들과 적합한 생장조건들을 어찌나 그리 세세히, 세심하게 외우고 있는지 그가 일하는 식물원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꽃박사’ 영규를 부른다. 

또한 그는 사람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식물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 ‘차동주’와 시간을 보내면서 영규는 동주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계부에게 빼앗긴 회사를 되찾고자 치밀한 계획 속에서 훈련받고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읽어내며 철저하게 정상인 역할을 해왔던 동주였다. 하지만 동주와 얼마 만나지도 않은 영규는 보름달이 둥그렇게 뜬 어느 밤에 연못을 보살피며 하늘나라로 먼저 간 미숙에게 말을 건넨다. “미숙씨를 닮은 사람을 만났어요. 미숙씨랑 눈이 똑같아요.” 들리지 않기에 사람도 사물도 유난히 세심하게 보아야 했던 눈, 청각장애인의 그 닮은 눈을 영규는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어찌 그가 바보일까? 영리하고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못 듣는 것을 듣는데…. 또 못하는 것을 하는데 말이다. 영규는 예수가 말한 “심령이 가난한 자”요 “온유한 자”요 “마음이 청결한 자”요 “화평케 하는 자”이다. 또한 공장 화재로 미숙을 잃고 “애통하는 자”였으며, 혼자 남은 ‘작은 미숙’에게 ‘봉우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딸로 훌륭히 키워낸 “긍휼히 여기는 자”였다(마 5:3∼9). 그렇게 그는 ‘똑똑한 자들에게는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꿰뚫어 본 사람이다. 그래서 내겐 영규가 오히려 ‘천재’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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