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일반 이만열 교수와의 대담

첨부 1


한국사학자 이만열(李萬烈) 교수와의 대담

 

하나님께 드리는 된장국

 

김재성 (한국신학연구소 연구교수)

 

 

올해가 우리 문화 유산의 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문화 유산' 하면, 불교나 유교의 문화 유산을 떠올리게 된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아직 그 역사가 짧아서 우리의 문화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남겼는지 의문이다.

 

빛나는 문화를 일구어 가는 것은 꼭 오랜 시간 속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는 어떤 유물로 화하기 이전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지난 날 이룩한 것을 잘 보존하고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 어떠한 한국 그리스도교 문화를 일구어 가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지 않은가.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 땅에 어떤 문화 유산을 남길 것인가?

 

이런 물음을 가지고 한국사학자 이만열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경남 함안 태생이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에서 공부하였고 그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1970년부터 지금까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1980년에는 신군부의 강압 하에서 4년간 해직당한 적도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에 관한 연구'인 데서 나타나듯이 그는 식민주의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주의사학을 세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1982년부터는 한국기독교사연구회 회장 일을 맡으면서 선교사관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그리스도교 사관을 정립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사대계, 삼국편}, {삼국시대사 강좌}, {한말 기독교와 민족운동}, {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 {한국 기독교와 역사의식}, {한국기독교 문화운동사},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등의 저서를 냈으며, 최근에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학문과 신앙을 겸비한 한국 사학계의 기둥이다.

 

정부가 정한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첫추위가 오는 듯한 정월 초이렛날 오후 3시 청파동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

 

한국 그리스도교가 남긴 문화 유산

 

김재성: 한국 그리스도교가 남긴 문화 유산이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지요. 가톨릭의 경우는 곳곳에 성지들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개신교의 경우는 그와 같은 곳도 많지 않지요?

 

이만열: 한국 그리스도교의 문화 유산이 어떤 것이냐 하고 물을 때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 정도로 '이것이다'라고 내 놓을 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그것은 먼저,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가 매우 짧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 200여년 개신교가 100여년의 역사인데 이는 서양의 그리스도교 역사나 우리 나라의 불교 역사와 비교해 볼 때 훨씬 짧은 것이죠.

 

다음으로, 개신교 신앙의 특징 때문입니다. 불교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상으로 그 신앙을 표현하였습니다. 불상과 불탑을 조성한 것은 그들의 신앙적 열정을 이런 형상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이지요. 가톨릭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제가 유럽의 옛 성당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한국의 사찰에서 느끼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종교개혁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가톨릭의 교회 전통 중심의 일종의 교회지상(敎會至上)주의를 허물고 성서지상주의를 확립하려는 것이 개신교 아니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교회와 전통을 중시하는 가톨릭은 그 신념에 상응하는 많은 형상물을 만들었고 또 성지(聖地)라는 것도 많이 지정하였습니다. 개신교회는 처음부터 그런 형상물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 타파하려고 하였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환호할 때 모세가 그런 것을 분쇄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강조했는데, 그런 전통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시적인 것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기피하는 개신교의 전통이 자연히 눈에 보이는 문화 유산을 창출하는 데 소홀히 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겠습니다.

 

김재성: 얼마 전에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예수님의 삶과 관련된 유적지마다 교회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는 대개 가톨릭이나 그리스 정교회이고 개신교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만열: 그래도 한국 그리스도교의 문화 유산을 찾아본다면, 선교사들이 와서 지은 초기의 건축물들을 비롯하여 교회 건물들을 들 수 있는데, 연세대학교의 일부 건물, 정동 문화제 예배당, 강화 성공회 성당, 맨 처음으로 세워진 교회 건물인 소래교회(아마도 지금쯤은 없어졌을 것이다), 남대문 시장에 있던 상동교회, 그리고 새문안 교회 구 예배당 등일 것입니다. 91년 문화부에서 편찬한 {한국의 종교문화와 예술}에 의하면, 불교문화재가 1천9백여개가 넘고 유교문화재가 3백68개나 되는데 비해 개신교 관계 문화유적은 겨우 14개 정도라고 합니다. 그것도 '국보'나 '보물' 급의 것은 하나도 없고 겨우 '사적'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건물들의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제대로 보존하는 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나마 있는 유서깊은 유적들을 헐고 재건축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런다 하더라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재성: 저도 오랜만에 고향의 모교회를 방문했을 때 내 마음속에 또는 옛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옛 교회 건물이 사라지고 웅장한 새 성전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고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현대식 건물로 지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처음의 교회를 어떻게든 보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꼭 어떤 화려한 그리스도교 문화 유산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는 교회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만열: 그렇습니다. 마지 못해 헐어버린다 하더라도 뒷날 복원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료는 남겨 놓았으면 합니다. 가령 교회 어느 곳에 원래의 모형도라도 남겨주었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조그마한 사적도 반드시 후세인들에게 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럽의 도시들 특히 파리 같은 곳에 가면 큰거리나 골목의 길가 혹은 건물에 어떤 표지판 같은 것이 더러 있어요. 뭔가 하고 들여다보면 그곳을 설명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이곳은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하던 아무개가 저항운동을 하다가 조국을 위해 숨진 곳이다" 하는 식입니다. 어떤 화려한 것보다도 그런 작은 것들이 주는 느낌은 진한 감동으로 정말 가슴 뭉클하게 합디다. 우리 나라에도 그렇게 해야 할 곳이 많습니다. 기독교회사와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가령 우리가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얼마나 떠받들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경남의 웅천에는 그와 관련된 표지판 하나 없었어요.

 

유럽인들의 그런 점을 본받아야 합니다. 교회의 유적이 될 만한 곳에 작은 푯말 하나 비석 하나라도 세우고 기념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지방의 교회들과 협력하여 그런 운동을 하려고 얼마 전부터 구상하고 있습니다.

 

김재성: 이를테면 3.1운동과 관련된 그리스도교 유적을 잘 표시하고 보존하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이겠군요.

 

이 교수는 이런 건물이나 유적들을 이야기하면서 그것들의 문화적 가치보다는 역사적 가치에 더 비중을 두는 것 같았다. 앞으로 각 교회의 교회사나, 한국 교회사를 서술할 때에 이런 역사적 건물들이 갖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런 것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잘 보존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사의식'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역사적인 유적들을 가까이하는 데서 자신의 뿌리를 인식하고 자기존재에 대한 확인과 긍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 한국 그리스도교의 문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인가. 이 교수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만열: 한국 그리스도교는 가시적인 문화 유산 대신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유산을 많이 남겼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새벽 기도를 하는 전통이나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전통을 세운 것입니다. 이는 외국의 교회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며, 그리스도교가 우리의 문화 속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가운데 꽃피운 창조적인 전통이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는 이 사회에 근면, 검약, 정직, 절제 그리고 직업의 소명 의식을 뿌리내리게 하여 사회를 건강하게 하려는 전통을 남겼습니다. 칼빈적인 개혁교회가 성한 곳에 자본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그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주장한 것입니다만, 이와 같은 개신교 정신(Protestantism)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정직하고 근면하며 합목적적인 사회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자본주의라고 소개된 것은 그런 근본 정신은 빠지고 향락성과 퇴폐성만 남았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이런 퇴폐성을 극복하고, 자본주의의 원래 정신이라고 하는 정직과 신의, 근면과 절약 정신을 그의 합목적성과 함께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러한 건전한 자본주의 정신이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기초로 했다고 할 때, 우리 한국 기독교의 사명과 전통은 이런 곳에서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해 이런 윤리를 확립토록 하고 좋은 전통으로 이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자본주의의 퇴폐성을 닮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른 바 물량주의에 빠져서 다들 더 가지려고 하고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기도 하는 이 세태에서 교회도 예외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또는 교회 지도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근검 절약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소명 의식입니다. 직업과 소명의 일치이지요. 영어에서도 calling이라고 하면 소명이라는 뜻도 되고 동시에 직업이라는 뜻도 되지 않습니까. 독일어에서도 Beruf라는 말은 이와 똑같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의식을 갖는다면, 각자가 맡은 일을 그저 돈을 벌고 더 가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럴 때에 각 사람이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개인도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사회도 더 살 만한 사회로 건강해져 가게 됩니다. 이런 것이 보편적인 그리스도교 문화가 갖는 합목적적인 점 또는 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런 점을 반성하면서 건전한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확립하여 아름다운 전통으로 전해 준다면, 그것은 가시적인 유형의 문화 유산을 넘어서는, 귀중한 문화 유산이 될 것이며, 21세기의 한국 교회와 사회에 주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꽃피워야

 

근면함이나 정직함 같은 덕목은 꼭 프로테스탄티즘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문화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일치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고 빠르게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이 교수는, 우리에게도 그런 덕목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근면함이나 정직함이라는 개인 윤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소명 의식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새로운 가치 체계로서 이 사회에 공헌하였으며 또 공헌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교수는 우리 문화,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식민주의 사관'이 아닌 주체적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보려고 하고, '선교사적 사관'이 아닌 우리 그리스도인의 주체적 시각으로 그리스도교 역사를 보려고 노력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이 하나의 새로운 가치 체계로서 우리 사회 속에서 공헌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것은 철저히 우리 문화 속에서 피어나야 함을 역설한다.

 

이만열: 한국 그리스도교의 문화를 교회의 예배나 의식 속에서 이루어 가는 일도 중요합니다. 먼저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를 봅시다. 그 가운데 우리 나라 사람이 지은 노래말이 18개이고 우리 나라 사람이 작곡한 것이 17곡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전통적인 가락을 살려서 지은 찬송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음악적인 정서가 들어있는 찬송이 거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수용된지 백년이 넘는데도 우리의 정서로 된 찬송이 거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이 아닙니까.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한국교회는 수입품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대접한다고 해 왔지요, 이제는 우리의 것을 하나님께 내 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대접해야 하지 않겠어요.

 

왜 판소리의 가락이나 아리랑의 곡조를 찬송가에서 사용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속에는 사실은 독일, 영국의 국가뿐 아니라 핀란드의 국가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고유의 가락과 정서를 담은 그들의 노래이지요. 우리가 즐겨 부르는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앞에 있으니'나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찬숑만 하더라도 영국의 애정노래이거나 이별의 노래 곡이 아닙니까. 거기에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를 붙였지요. 그러기에 찬송이 될 수 있고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것은 그렇게 사용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아리랑'에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를 붙인다면 정말 좋은 찬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성: 얼마 전에 영국 셀리옥(Selly Oak)에 갔을 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특히 고유 의상을 입고 그들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을 추면서 예배를 드렸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습니다. 그곳에 있는 한국 사람들 몇몇도 풍물을 구해서 서툰 솜씨로 사물놀이도 선보이고 우리 가락 찬송가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외국 사람들이 우리 악기 우리 가락에 기울인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어요. 서로들 사진을 찍고 녹화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만열: 그렇지요, 우리의 것, 우리의 가락을 찾는다고 할 때, 바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내실 때에 개성적인 선물로 주신 것이라는 확신이 먼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가 민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관점이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울은 민족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에서 이해하였다고 봅니다. 민족이라는 공동체는 인류를 보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민족은 체질적인 외양(外樣)과 언어, 전통, 문화를 같이하는 공동체로서의 개성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민족의 보존은 핏줄로써만 아니라, 언어와 전통 등 개성적인 민족문화를 유지함으로써도 이루어집니다. 핏줄로서의 민족을 보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성적인 문화를 통해서도 민족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민족문화는 하나님의 선물이면서 민족보존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흔히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이는 것이지만, 과거의 전통문화가 무속과 관련이 되었다고 해서 혹은 불교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다 우상숭배다, 이교적이다 하면서 백안시하거나 배척하는 것을 보는데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내실 때에 개성적인 선물로 주신 우리 문화를 다 배척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물론 현재 타종교와 관련된 우리의 문화나 전통문화라고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또 전통문화라는 것이 오염되고 타락 부패된 요소가 많아 본래의 순수성을 훼손한 경우도 있습니다. 오염되어 때가 묻어 있고 타락 부패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씻겨내고 정화시켜야지요. 그런 개혁적인 작업 후에 남는 순수한 우리의 것마저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개성적으로 주신 그런 순수한 민족문화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저는 한국의 기독교문화와 관련, 표현문화로서의 기독교문화는 더욱 개성화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개성적인 음악, 미술, 문학 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가치문화로서의 한국의 기院교문화는 기독교가 갖는 보편적인 가치에 더욱 밀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기독교가 갖는 가치문화에는 아직도 비기독교적인 요소가 많이 혼효(混淆)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개성적인 기독교문화와 관련, 저는 이런 비유로 말하고 싶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하나님께 음식을 대접해 드린다면, 우리가 무엇을 대접할 것이냐는 겁니다. 한마디로 된장국을 대접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프스테이크보다는 불고기를 대접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한국의 개성적인 기독교 문화는 바로 이런 것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된장국과 불고기를 대접하여 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건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한 마디의 말로 시원하게 알게 되었을 때에 느끼는 시원함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한꺼번에 환하게 머리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는 교회의 예배나 의식뿐 아니라 신학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가 우리의 신학이라고 하고 있는 것은 거의 수입 신학이 아니냐고 물으면서, 우리 삶과 토양에서 피어나는 우리의 신학을 수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한다.

 

이만열: 아마 나만큼 민중신학의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신파'라고 하는 보수교단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더욱 놀라시겠지요. 나는 민중신학의 세세한 주장에 다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적 상황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과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이룩된 '한국의 신학', '우리의 신학'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내가 한국사와 한국교회사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신학도 하나의 학문이라면,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자기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의식은 자기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자신이 겪고 있는 제반 상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신학은 자기의 삶에서 나오는 많은 문제의식을 신학적인 과제로 승화시키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해 왔고 또한 거부해 왔습니다. 삶의 현장을 무시한 학문이 사변(思辨)에 그치고 말 듯이, 우리의 삶의 현장을 무시한 신학도 행동을 불러오지 못하는 공허한 사변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동안 한국의 신학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러한 성격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의 근거가 '우리' 아닌 다른 데에 근거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그동안 '수입신학'을 아무리 한국교회에 갖다 부어도 한국교회는 자기의 주체성을 갖는 데에 실패한 것이지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며 또 보편성을 띠는 것입니다. 각각의 민족이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와 색깔을 가지면서 전체로서 하나의 목표, 이를테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가는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스도교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무장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각각의 민족 문화 속에서 꽃피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문화는 역사 속에 뿌리를 내려야

 

김재성: 한국의 민중신학이 갖는 의의를 자리매김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중요한 의의를 갖는 민중신학이 명실상부한 한국의 신학으로 서려면, 그것이 한국 교회의 예배와 의식뿐 아니라 신도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진보적인 이론을 뒷받침하는 문화적, 실천적 체계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100년 또는 200년 동안 선교사를 통해 전해 준 기독교를 이 땅에 확산시키는 데는 열중하였지만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교 문화와 역사를 일구어 가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점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시면 합니다.

 

이만열: 지난 70년대와 80년대를 돌이켜 보면 그래도 그 당시에는 한국 교회가 현실 역사에 대하여 책임적으로 대응하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에 와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90년대에 와서는 그리스도교 운동이란 전무하다시피 하거든요. 전에는 진보적인 교회와 보수적인 교회의 차이가 이런 점에서 많이 났는데, 요즘은 이런 점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비슷해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70년대와 80년대에 그리스도교인들이 열심히 운동을 전개하면서도 여타의 일반 운동권의 논리와 어떤 차별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운동의 고유한 논리나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결여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문민'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제는 군사정권 아래 있었던 문제들이 해결되었다고 방심하고 일반 운동권이 긴장을 풀기 시작하자 덩달아서 그리스도교 운동도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가치 체계에는 일반 사회윤리가 갖지 못하는 윤리와 변혁의 힘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것은 그저 경쟁하고 대립하는 것을 넘어서서 용서하고 화해하며 사랑하는 것이지요.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통일 문제나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은 정부의 시각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정부에서 '한총련 사태'다 '잠수함 사건'이다 하면서 적대의식을 노골화하면, 교회는 아무런 대응 논리 없이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 정부의 통일 논리를 넘어서는 교회의 통일 논리가 나와야 합니다. 그것은 이런 저런 이유로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와 사랑에 기초하는 '성육신(成肉身)의 논리'와 '하나님나라의 윤리'에서 새롭게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성: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노사간이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지요?

 

이만열: 그렇습니다. 노사간의 문제도 일반적 사회에서는 경제의 논리, 정치의 논리에서 판단을 하고 대응을 하겠지요. 하지만 교회의 대응은 그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이 과거에 가난하던 시절에 외국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또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일본 사람들은 단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우리를 억압하고 학대하였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단지 우리와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시하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저지른 것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어느새 우리를 억압하던 일본과 같은 존재로 변해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약한 사람을 억압하는 행태에 대하여 비판해야 합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리스도교의 정신으로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역사 서술

 

김재성: 어떻게 이 땅에 그리스도교 문화를 아름답게 꽃피우느냐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교회의 역사 참여에 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문화 또는 역사를 평가하고 서술하는 문제를 언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만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기독교 백주년을 맞으면서 개 교회들이 교회 역사를 발간하려는 열의가 부쩍 늘어나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쓰려고 할 때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것을 쓰는 데에 사용되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료없이 역사를 쓰고 있어요.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회고담에 불과하지요. 한국교회가 외형적인 교회 건물을 보존하고 교회성장을 기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매주일 간행되는 교회의 주보와 교회 각부의 소식지를 모으는 일에는 무성의할 정도로 역사의식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지요. 교회 역사를 편찬하려는 의식이 있다면, 먼저 매주 간행되는 교회의 인쇄물이라도 제대로 수집하는 열의가 있어야지요.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어떤 교회에서는 30년도 안되는 역사를 쓰겠다고 열심이예요. 엄밀한 의미에서 그런 교회의 역사를 편찬한다는 말은 맞지 않아요. 한 세대의 역사는 그 세대가 지난 후에 쓰는 것이거든요. 자신이 세운 교회를 스스로 평가하는, 그런 역사를 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역사'라고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것은 역사라기보다는 '지'(誌)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개 교회의 역사를 쓰려면 먼저 교회의 일지(日誌)와 당회록이나 제직회록, 각종 지회의 회록이라도 매주 제대로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교회의 역사는 좀더 시간이 흐른 후에 후세들이 그런 자료에 근거하여 쓸 수 있겠지요. 그 때에 우리의 후진들이 오늘의 교회를 평가할 때 좋은 평가를 하고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이 본받고 싶어하게 되도록, 오늘 한국 교회는 이 땅의 문화와 역사 속에 그리스도교 문화를 꽃피우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김재성: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좋은 길을 제시해 주신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런 길로 나아갈 때 머지 않아서 유형, 무형의 문화재들을 많이 남기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귀한 시간 내 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