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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묻힐 자리와 죽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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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 목사(동안교회)

묻힐 자리와 죽을 자리의 공통점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묻힐 자리가 수동적이며 개인의 삶이 끝나고 정리되는 마지막을 의미한다면, 죽을 자리는 능동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죽음으로써 공동체에 미래를 열어주는 뜻으로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묻힐 자리가 어디인가를 찾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죽음은 그 자체로서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소망하며 살아왔던 삶의 질적인 변화라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이 땅에 남겨진 공동체에 희망의 미래를 열어주는 출구가 돼야 한다.

20세기 죽음에 관해 연구한 최고의 학자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정작 자신의 관심은 삶에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죽음에 대해 깊게 연구한 이유는 죽음만이 인간 삶의 진실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드러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스 박사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야말로 삶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위대한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묻힐 자리를 찾지 않으셨다. 죽을 자리를 찾으신 것이다. 그 자리에 가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을 했다. 묻힐 자리를 찾으셨다면 구태여 그렇게 어려운 자기와의 싸움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죽기를 원하신 십자가라는 그 자리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인자가 온 것은…’ 이라는 말씀으로 자기의 사명을 외치셨고, 마지막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최후의 결전을 치르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은 구세주가 되셨고, 죄인된 인간에게는 구원의 참 소망의 길을 주셨다.

요셉은 자기 민족이 안락하고 편안한 애굽에 안주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자신의 뼈를 묻힐 자리인 애굽이 아닌 ‘죽을 자리’인 고향땅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이 요셉의 메말라버린 뼈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노예로 전락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가신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묻힐 자리만을 찾는 것 같다. 그들이 자신들의 삶으로만 끝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아니 오히려 가족과 친지들에게 고통으로 남겨진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비극일까. 이제 진지하게 죽을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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