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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침묵속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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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속의 믿음


일본의 엔도 슈사꾸라는 분이 “침묵”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 책을 보면 그런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포르투갈 예수회에서 일본에 페이라라는 신부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그는 교토와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39년 동안 은신하여 선교를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발각되어 구덩이 속에 매달려 고문을 받다가 그 고문이 너무 가혹해서 그만 항복합니다. 
그 소식이 포르투갈 선교회에 보고됩니다. 

고국에서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모두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예수회에서는 세 명의 성직자를 확인차 일본으로 파견합니다. 

그중 한명은 '로똘리고'였는데 이 사람도 체포되어 마침내 수용소에서 '페이라' 신부를 만납니다. 
나머지 두 명도 체포되어 고문당하는 동안 비명을 지릅니다. 
그리고 끝내 그들이 보는 앞에서 순교합니다. 

이 두 사람이 그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페이라' 신부가 부르짖으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배교한 것은 저 신음소리 때문이야, 
 저렇게 신음소리를 내며 죽어 가는데도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어, 
 저들이 주의 영광을 위해서 신음하고 부르짖으며 고통당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잠자코 팔짱만 끼고 침묵만 하셨단 말이야”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로똘리고' 신부도 두 친구의 신음소리를 듣고 
페이라 신부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후미애를 발로 밟습니다. 

후미애는 예수상을 앞에 놓고 발로 밟고 지나가게 하는 배교 틀입니다. 
그 예수 상을 발로 밟고 지나가면 배교로 인정하고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밟지 않고 건너뛰면 앞에 있는 300도로 끓는 지옥탕에 던져졌습니다. 
'로똘리고'는 앞에 있는 사람도 건너뛰다가 지옥 탕에 던져지고 
그 뒤에 있는 사람도 건너뛰다가 지옥탕에 던져지고 
또 그 뒤에 있는 사람도 똑같이 건너뛰다가 지옥 탕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로똘리고'는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주의 영광을 위해서 지옥탕에 던져지는데도 
하나님이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건져 주시기는 커녕 살인자들에게 재앙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로똘리꼬는 마침내 후미애를 발로 밟고 살아납니다. 

여기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침묵'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람들이 고통을 이겨가며 신앙고백을 할 때 
하나님이 금방 나타나셔서 불이라도 내려 핍박자들을 심판하시던지 
아니면 300도로 끓는 지옥 탕에 던져졌을 때 기적같이 건져주셔서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액션을 취하셔야 
나도 살고 하나님도 영광 받으시고 
그래야 불신자들이 보고 하나님을 믿을 것이 아닙니까. 
그곳이 우리의 바람이고 기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답답하게 끝까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일관하고 
결국 귀한 생명들이 말없이 지옥 탕으로 떨어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똘리고 신부도 마침내 하나님의 침묵 속에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비명소리에 그만 후미애를 밟고 항복하고 맙니다.  

믿음의 세계를 우리는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잘되고 건강하고 앞길을 훤히 인도해 주실 것으로만 믿는 믿음이 
오늘날 대부분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어려움이 찾아오면 기대와 어긋난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회의감에 빠지고 불평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세계가 그 정도의 깊이라면 그것은 믿음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사뭇 흔들리고 좌초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이 이 위기에서 건져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건져주시지 않을 지라도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세 친구는 결국 풀무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왜 나를 버리십니까”하고 절규했지만 
예수님은 그 절규에도 침묵하시는 그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침묵속의 음성을 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침묵 뒤에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그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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