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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목회자들의 아프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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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윤 목사(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부총회장)

14세기쯤 100년 전쟁으로 프랑스 남부의 해안 도시 칼레는 영국의 집중 포격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점령군 에드워드 3세의 피비린내 나는 칼날 앞에서 칼레 시민들의 목숨 역시 풍전등화였다. 이때 칼레 시민들이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게 해달라'고 에드워드 3세에게 간청했다.

"대신 너희들 중에 지체 높은 자 여섯명이 목숨을 내놓아라. 그러면 학살과 파괴만은 면케해주겠다."

이때 칼레 최고의 부호였던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희생양을 자처하며 나섰다. 곧이어 다섯 명의 자원자가 나왔다. 이들은 목에 밧줄을 두르고 맨머리와 맨발에 홑옷 한벌만을 걸치고 성을 나서야 한다는 굴욕도 감내키로 했다. 하지만 영국군은 이런 모습으로 성 밖으로 걸어나오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죽이지 못했다.

아프카니스탄 피랍 사태가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헐벗고 굶주리고, 의료 혜택이 전무한 아프카니스탄을 위해 봉사하기위해 떠났던 우리의 젊은이들 중 2명은 싸늘한 시신이 돼 돌아왔고, 자매 2명은 풀려나 귀국했다. 돌아온 자매 중 1명은 다른 자매의 양보로 고국땅을 밟았다.

내가 시무하는 교회에서는새벽, 주일, 수요, 금요 기도회 때마다 아프카니스탄에 인질로 잡혀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뿐일까.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에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많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기철 목사가 순교했다. 6·25 전쟁 때는 손양원 목사 등이 순교했고, 5·16 군사쿠데타의 부당성을 지적한 당시의 젊은 목회자들은 오랜기간 감옥 생활을 했다.

아프카니스탄에 억류된 우리의 젊은이들을 위해 또다시 기독교 목회자들이 행동할 때가 됐다. 칼레 시민 6명이 자기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섰던 것처럼 우리 목회자들 20명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가 인질로 대신 잡혀있을 테니 젊은이들을 석방해 달라'고 간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부터 기꺼이 인질되기를 자원할 것이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목회자들 20명이 인질을 자원하면 억류된 우리의 젊은이들 뒤에 5만의 한국의 목회자들이, 5만의 목회자 뒤에는 1200만 한국 기독교인들이, 그리고 그 뒤에 40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을 탈레반 측에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칼레성을 포위한 영국군이 퇴각한 것처럼 우리의 젊은이들이 풀려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국 기독교의 목회자들이여! 칼레의 시민처럼 젊은이를 위해 아프카니스탄으로 가자고 감히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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