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세상의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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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
1899년 3월 1일자 미 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님이 발행한 최초교회신문
‘대한 그리스도인 회보’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 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고을로 옮겨 달란다니 어찌하야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수 없느뇨?
우리 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라.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어찌 추호나 그른 일을 행하며 관장의 영을 거역하리요?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히 백성의 재물을 빼앗을 지경이면 그것은 쉽게 빼앗기지 아니할 터이니
그 양반의 갈수 없다는 말이 그 까닭인 듯.....”
당시 기독교인은 장로교 감리교 합해서 1만 명 조금 넘는 정도였습니다.
인구가 1천 5백만 정도였으니 전 인구의 0.1%도 안 되는 미미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는 단 한 건도 부정부패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못된 관리들도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서는 부정을 저지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금입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이었습니다.
1899년 3월 1일자 미 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님이 발행한 최초교회신문
‘대한 그리스도인 회보’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 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고을로 옮겨 달란다니 어찌하야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수 없느뇨?
우리 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라.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어찌 추호나 그른 일을 행하며 관장의 영을 거역하리요?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히 백성의 재물을 빼앗을 지경이면 그것은 쉽게 빼앗기지 아니할 터이니
그 양반의 갈수 없다는 말이 그 까닭인 듯.....”
당시 기독교인은 장로교 감리교 합해서 1만 명 조금 넘는 정도였습니다.
인구가 1천 5백만 정도였으니 전 인구의 0.1%도 안 되는 미미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는 단 한 건도 부정부패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못된 관리들도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서는 부정을 저지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금입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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