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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내 친구 톰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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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톰 리틀 


미국 뉴욕 트로이의 브룬스윅교회 해리 하인츠 목사가 15일 지역신문인 ‘타임스유니언’에 아프간 국제지원단 소속 10명의 희생자 중 리더인 톰 리틀을 회고하는 글을 기고했다. 교회는 리틀을 위해 25년간 후원했다. 하인츠 목사의 회고를 정리했다. 

톰은 운동선수 같은 체형을 갖고 있었지만 시골뜨기처럼 부끄러움이 많았다. 마치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소년의 성인 버전 같다고나 할까. 

톰을 최근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톰과 그의 부인 리비는 미국에 잠깐 머물렀었다. 그들이 아프간에서 봉사를 시작한 지 30년이 훨씬 넘은 때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톰은 나에게 아프간에 한 번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목사보다 한 명의 친구로 있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톰은 전 세계에 수많은 친구가 있었다. 톰과 나는 이미 친구였지만 분명 그 순간 그는 더 깊은 우정을 원했던 것 같다. 

우리는 아프간 사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웨이터가 다가오자 톰은 그에게 아프간 말로 인사를 했다. 웨이터는 곧 웃었고 카불에 의사 친척이 있다고 반갑게 이야기했다. 톰은 그 친척을 알고 있다고 했다.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는 둘의 이야기를 경외감으로 듣고 있었다. 

톰은 내게 전보다 더 심해진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일화를 말하기도 했다. 그는 병사들이 전투 후에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같은 증상도 있었는데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는 세 딸에 대해 얘기하면서 딸들은 머리 위로 지나가는 미사일 소리만 듣고도 그것이 우리를 향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톰은 아프간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했다. 사람들의 눈을 고쳐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톰이 30여년 동안 계속 일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람들을 사랑했고 실제적인 필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정치적 어젠다도, 서구문화를 전하기 위한 의도도 없었다. 

그가 들었던 유일한 깃발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깃발이었다. 선한 일을 위한 우정의 깃발이었던 것이다. 그 깃발은 피로 얼룩졌지만 여전히 휘날린다. 

이제 카불에서 살아 있는 톰을 보는 것은 힘들게 됐다. 대신 그의 무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프간을 사랑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톰이 걸었던 길을 걷고싶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캐나다 비행사이자 시인이었던 존 매기의 시, ‘고공비행(High Flight)’에서 톰을 떠올리면서 첫 구절에 그의 이름을 넣고 싶다. 

“톰은 이 땅의 하나 됨을 위해 스러졌습니다…그는 손을 뻗어 하나님의 얼굴을 만졌습니다.”

- 국민일보 신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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